한국일보

고맙습니다, 스승님!

2011-05-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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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주(PS 32 초등학교 교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사회생활을 한 후 대학입학을 준비할 때 건강하지 못했던 나는 체력장이 걱정이 됐었다. 무작정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을 찾아간 나에게 의외로 선생님은 쉽게 승낙하셨다. 그래서 저녁이면 빈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여러 날 동안 달리기, 공 던지기, 넓이 뛰기, 철봉에 매달리기 등
을 연습했다.

덕분에 나는 20점 만점에 19점을 받았고 재미나고 바쁜 대학시절 마음뿐 선생님께는 연락 한 번 드리지 않았었다. 어느덧 뉴욕에서 23년째 교사를 하다보니 선생님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특히 제자들의 결혼 청첩장을 받아들고, 제자 하나가 같은 학교의 1학년 선생님으로 재직하게 되면서 내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고 있었다.‘너무 늦기 전에 찾아뵈어야 할 텐데…’.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생겨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6년 전에 퇴직하신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졸업한 학교 행정부 직원을 통해 전달 받고 전화를 드렸더니 “허허, 그걸 기억하나?” 하셨다.

죄송한 마음에 홍당무가 된 내 얼굴은 모르신 채로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날 30분 일찍 나가 앉은 나는 선생님의 얼굴이 가물거려 마음 조리는데 커피숍 입구에 나타나신 분은 고등학교 때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호령하시던 그 모습의 체육선생님이 아니던가? “30년 동안 어떻게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맺힘이 없었다. 선생님은 내 전화를 받으시고 이미 나를 위한 바쁜 일정을 계획하셨던 듯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관사와 새로 옮긴 관사 방문, 그리고 혹시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으셔서 부속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의 면담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준비해두신 선물을 챙겨가지고 나오며 3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교 근처 떡볶이 집과 문방구점을 두루 둘러보고 남산 케이블카 밑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도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건강유지를 위해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노하우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다음 방문에는 매주 하시는 등산을 따라가겠다고 약속드렸다. 섭섭하게도 헤어질 시간! 전철 계단을 내려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여쭈어볼 필요도 없었던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읽고 있었다.

“제게 남겨진 시간, 선생님처럼 좋은 스승으로 마무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 다시 선생님의 모습이 무던히도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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