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물 뭐 줄거야?”

2011-05-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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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병 임(논설위원)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낮은 기온과 차가운 바람은 두꺼운 옷을 계속 입게 만든다.겨울 코트와 스웨터를 세탁소에 맡기려고 소파 위에 내놓았다가 추운 날씨에 다시 챙겨 입는다. 겨울이불도 모두 빨아서 들여놓았다가 다시 꺼내어 덮고 잔다.달력은 분명 화창한 날씨이어야 할 오월인데 아직도 쌀쌀한 날씨가 몸도 마음도 춥게 만든다.오는 8일은 어머니날이다. TV를 보면 온통 어머니날 선물 마케팅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다음날 19일에는 아버지날이 있다. 어머니날이 지나면 다시 아버지날 선물 마케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민 1세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는 고향이고 모국이고 그리움이다. 또한 추억이고 서글픔이고 회한이다.우리 어버이들은 왜 그리 험한 세상을 고생에 찌들어 살다 가셨는지, 일제시대와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일만 하다 가셨다. 당신은 굶더라도 자식들 입에 밥 한술, 고구마 한입, 라면 한 젓가락이라도 더 넣어주려고 애쓰셨다. 대문 밖에서 기다리는 자식에게 피곤에 지쳤어도 잊지 않고 사온 사탕을 주머니에서 꺼내주던
아버지, 컴컴한 골목길을 돌아 자식들에게 먹일 쌀을 구해 머리에 이고 총총걸음으로 오던 어머니, 혹 누군가에게는 벽돌공장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일하여 번 돈을 차비하라고 흙 묻은 손으로 건네주던 아버지, 시장 좌판에서 벌벌 떨며 나물 장사하여 학비를 마련해주던 어머니도 있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서 우리 시중을 들어줄 것 같은 어버이가 영영 사라진 다음에야 그 넘치는 사랑에 눈물이 난다. 한번 떠나간 분은 아무리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애타게 기다려도 다시 올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다.입학식이나 졸업식, 결혼식, 집안의 경사가 있는 날이면 더욱 생각이 나고 어버이가 좋아하던 과일이나 음식을 보면 또 가신 분 생각이 난다. 누구나 즐겁게 살았던 기억보다는 남루하고 초라한 어머니가 창피해 도망쳤던 일, 늙은 아버지가 구차스러워 보여 숨어버렸던 일, 늘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아버지가 지겨워서 모른 척 했던 일, 그렇게 잘못 했던 일들만 새록새록 기억나는 법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엄마” 하고 달려가 손잡고 좋아하던 케이크 집에 모시고 가 따스한 차와 함께 마주보며 먹고 싶을 것이다. 아픈 아버지 일으켜 세워 안마 해드리면서 “많이 아프세요”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네고 싶을것이다.이 모든 것들이 그분들이 사라진 다음에는 소용이 없다. 가장 소중한 것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회한에 찰뿐이다. 아무리 제사상에 생전에 당신이 좋아하던 과자나 감귤을 올리면 뭐 하는가. 2세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어버이라고 다같은 어버이가 아닌 것이 “저 사람, 엄마 맞아?” 혹은 “아버지란 사람이 왜 저래?”하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되겠지만 아이들에게 효도할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

며칠 전부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더 추운가, 도무지 5월 봄날 같지가 않은데 딸아이는 어머니날 뭐하고 싶으냐고 계속 졸라댔다. “센트럴 팍 갔다가 맨하탄에서 밥 먹을까? 브루클린 브릿지 보이는 카페 갈까?” “어머니날이라 어딜 가도 사람 많을 텐데 복잡한 것 싫어. 센트럴 팍도 바람 불고 추워.”
거절만 하다가 ‘후회할 일 남기지 말자’ 싶어 정신이 번쩍 났다.“그래 시푸드 레스토랑 가자, 공원에도 가자. 선물은 뭐 해 줄거야? 이왕이면 돈으로 줘, 내가 사고 싶은 것 직접 사게. 얼마 줄 거야?” 호기 있게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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