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곡된 한국현대사

2011-05-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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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상기(‘역사가 말 못하는 것’ 저자/의사)
고려와 조선조 천년의 역사로는 우리의 조상들에 의해 쓰여진 실록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조선조 고종임금(재임기간 1863-1907)이래 실록은 조선이 망한후 일본총독부 감시 아래 쓰여졌고 당시 총독부에는 일본인들이 다수 참여한 ‘조산차 편수회’라는 조직이 있었으니 한국의 현대사란 일본인들이 식민지 아이디어러지(colonial ideology)에 맞게 편집됐으리라는 것이 쉽게 이해된다.

일본이 당시 독립국가였든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에 그들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조선은 자치능력이 부족한 분열주의와 사대주의에 물든 정체된 미개국’이라는 인식을 선전하게 됐으니 그것이 바로 식민지 사관의 골자이기도 하다. 한국인에 의해 독립된 판단에 따라 편집된 한국현대사란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자란 우리들 뼈속에는 ‘사색당파 싸움과 사대주의 때문에 조선은 망했다’라는 인식이 깊숙이 젖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 본다. 우선 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철학을 보자. 조선은 왕의 독재국가가 아니었다. 정도전이 집필했다는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에는 맹자 사상인 민주정신이 흐르며 왕권이 제약받는 신하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나라였다. 조선은 주로 문(文)의 나라였기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분출하며 왕에게 상소도 했다(영남만인소). 이런 현상을 비현실적 탁상공론이라며 분열주의로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사회 정당정치의 모습으로 특정세력의 독주를 막고 4색당파가 견제와 균형에 기여하는 순기능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일본은 무(武)의 나라로 쇼군(장군)이 통치했고 군이라는 수직적 명령체계에서 칼잡이 사무라이들이 활약하던 나라였다. 이런 일본인을 정치생리상 조선의 사색당파는 백해무익한 제도로 느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작고 약한 나라는 생존을 위해 큰 나라 눈치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다만 외교적 수사로 포장하며 덮었을 뿐이다. 오늘날 미국의 눈치 안 살피는 나라가 몇이나 될 것인가. 우리들의 ‘영원한 혈맹이며 우방이라는 미국’과 일본제국은 각기 필리핀과 조선을 식민지화한다는 내용의 태프트 가쓰라 비밀협약(1905)을 맺고 디어도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은 자주 ‘나는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바란다 I should like to see Japan have Korea’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고종임금은 믿었던 미국에 발등 찍혔다. 조선이 망한 것은 사색당파도 아니고 사대주의도 아니고 국제식민지세력의 공모의 이에 동조한 친일세력 때문이었다. 엄연한 국제 약탈세력과 그에 동조한 친일세력은 모르는 체 하면서 자기조상들의 사색당파와 사대주의 타령이나 되풀이하는 식민지 사관 후예들의 태도야말로 사대주의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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