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Before 9.11 After 9.11

2011-05-03 (화)
크게 작게
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뉴욕의 가을은 아름답다. 2001년을 빼고는 말이다.
그해 9월11일 아침 출근시간 맨하탄에서 퀸즈로 건너가는 퀸즈보로브릿지 한 가운데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맨하탄 남단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 많은 사람들이 교량 한가운데 차에서 내려 그 빌딩을 쳐다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취재차 퀸즈보로브릿지부터 걸어서 도착한 뉴욕시청 앞은 전쟁터였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 자동차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와 서류 조각들, 하늘을 덮은 검은 연기, 간혹 들려오는 전투기 소음 등. 10년이 다돼가는 지금도 생생하다.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나누듯이 미국의 역사를 9.11 이전과 9.11 이후로 나눈다고 한다. 9.11 사건은 지난 2001년 9월11일 항공기 납치 동시 다발 자살테러로 110층짜리 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가 공격을 받은 테러 참사를 말한다.
이 사건은 사우디 아라비아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과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Al-Qaeda)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납치된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워싱턴 국방부 청사 사망 또는 실종 125명, 세계무역센터 사망 또는 실종 2,500~3,000명 등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명 피해만도 2,800~3,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경제적인 피해는 WTC 건물 가치 11억달러,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달러,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달러 외에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9.11 발생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이라크를 함락해 새로운 과도정부를 출범시켰다. 미국내 생활도 척박해졌다. 테러 수사기관에 엄청난 권한을 부여한 애국자법으로 당국이 테러
‘의심자’의 집이나 컴퓨터를 몰래 수색할 수 있고, 증거 없이도 도서관 서점 병원 은행 등에서 이용 기록을 빼 볼 수 있도록 했다. 테러 의심자는 무기한 구금이 가능하고 전화와 전자우편 감청을 광범위하게 허용했다. 특히 9.11 이후 미국내 외국인의 삶이 상당히 고단해졌다. 뉴저지주는 외국인 운전면허 시험 장소를 4곳으로 제한했고, 뉴욕주는 아예 방문비자나 관광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은 응시 자격을 박탈해 버렸다. 철저한 몸 수색과 화물 검사, 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지문 채취 등 비행기를 타는데 불편함은 이미 생활이 돼 버렸다.

이같은 전세계적인 큰 변화가 모두 9.11 테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일 그 테러의 주모자인 빈 라덴이 사살됐다. 빈 라덴은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의 부호가문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후 상속받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고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곧 아프간으로 건너가 소련의 아프간 점령에 항의하는 회교저항운동을 주도하면서 영웅으로 부상했다. 어느 누구보다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빈 라덴은 왜 테러리스트가 됐을까.

테러는 광인형과 범죄형, 순교형이 있다고 한다. 그중 순교형은 종교적 또는 이념적인 신념이기 때문에 타협이나 망설임이 없이 자살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분류한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 문제, 십자군 전쟁으로 대변되는 종교 문화적인 충돌, 미국의 이중적인 대외정책 등 수많은 이슈들이, 많은 중동인들이 그렇듯 빈 라덴을 테러의 현장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무고한 피해자를 낳고,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테러는 최악의 정치행위에 불과하다.

보복의 정점에 있던 빈 라덴이 죽음으로써, 9.11 시대가 일단락됐다. 미국에서는 환호와 함께, 새로운 테러에 대한 공포가 스멀거린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와 미국의 보복 공격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람의 목숨값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후 중동정책이 ‘대화를 통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수십년을 이어온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중동에 대한 미국의 햇볕정책이 필요할 때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