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카터의 보따리와 에디 전

2011-04-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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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전 대통령이 이번에도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을 데리고 나올 수 있습니까? 전씨. 북한에서 체포됐다는 한국계 에디 전 말이에요.”

“그 건은 많이 기대들 하는데 이번에는 쉽지가 않을 겁니다. 대체적으로 그런 것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을 주기 위해 공화국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소리가 있어 그다지 밝기만 하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이달 초 주유엔북한대표부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던진 질문과 그로부터 들은 답변이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더 엘더스’(The Elders) 멤버들의 방북 계획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북한 소식에 정통한 이 관계자에게 전씨의 석방 가능성을 타진한 것.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해 8월 북한을 방문해 북한에 7개월간 억류돼 있던 미국인 아이잘론 곰스의 석방을 이끌어낸 실적이 있어 혹시 이번 방북에도 전씨의 석방 노력이 포함돼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인 지난 12일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인 1명이 현재 북한에 억류돼 있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억류 미국인의 석방을 북한정부에 촉구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곧바로 다음날 "미국 공민 전용수가 조선에 들어와 반공화국범죄행
위를 감행해 2010년 11월 체포되어 해당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전용수는 에디 전의 한국명. 카터 일행의 방북 목적에 애당초 전씨 석방 노력이 포함돼 있었는가의 여부를 떠나 미국과 북한이 그의 억류 사실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문제를 카터의 ‘해결 리스트’에 추가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 언론은 카터의 방북과 전씨의 석방 여부를 집중 보도하고 나섰고 심지어 일부 언론은 그 결과를 이번 방북 성과의 잣대로까지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 언론은 한국 언론과는 달리 카터 일행의 방북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구체적인 성과로 전씨의 조기 석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을 정도이다.이유는 ‘디 엘더스’가 24일 낸 보도자료에서 확인됐듯이 6일에 걸쳐 베이징, 평양, 서울을 차례로 방문하는 카터 일행의 목적이 민간인 차원에서의 “남북 간의 긴장관계 완화 기여”와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 방안 논의” 등 국가 대 국가 차원의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 · 연평도 무력도발에 대한 사과 등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대북 지원을 재개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 달 31일에도 ‘국방위 검열단’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도발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물론 “전쟁을 해도 진짜 전쟁 맛이 나는 전쟁을 하겠다”며 오히려 한국을 협박하고 있다.따라서 미국 언론은 카터 일행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들 한국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고 한국이 대북 지원을 재개해 남북 관계 진전 및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돌파구를 마련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비현실적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기대가 한국과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를 모두 무시하는 오산이라는 것이다.그래서인지 전씨 조기 석방에 대한 주유엔북한대표부 측근의 답변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카터 일행의 방북 실적을 떠나 그들이 북에서 가져올 수 있는 어떠한 ‘보따리’ 보다도 당장 억류돼 있는 전씨의 자유 소식이 더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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