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트남을 다녀와서

2011-04-25 (월)
크게 작게
손영구(목사)

4월초 자유의 땅 베트남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이곳은 내가 자유월남을 지켜주기 위해 목숨 걸고 육군대위로 참전해서 3번이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경험이 있는 땅이다. 미국으로서는 최초의 실패한 전쟁이란 오욕을 남긴 곳이 월남이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미군 노병이 한국을 방문할 때 느끼는 감격과 비슷한 감격이 내마음속에
도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의 대결이 한창이었던 시대에 남부월남 정부를 도와 그렇게 많은 미군의 희생(한국전쟁에 희생된 숫자와 비슷한 54.000명)과 자금 및 군장비지원이 있었건만 자유월남은 북부월맹에게 패한 땅이기도 하다.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공산화된 것은 미군의 철수 때문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곳에서 희생되나 전쟁에 이길 승산이 보이질 않자 국내에서는 반전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었다, 미국의 키신저와 북 월맹의 레 둑터가 평화협정에 싸인 함으로 미군과 한국군은 철수하게 되었다. 외국군이 철수한 1975년 구정을 기해 월맹군이 총공격으로 사이공을 함락시킴으로 공산화 통일이 된 것이다. 현재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전법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을 철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도 미군이 철수하면 곧 공산화되고 만다.


둘째, 월맹군은 간첩남파, 게릴라전법 등을 쓰며 죽음을 불사했다. 남부 월남정부와 군대는 미군의 지원과 전투를 믿고 무사안일에 빠졌을 때, 호치민 군대는 간첩남파, 게릴라 전법을 쓰며, 전열을 계속 가다듬었다. 사이공근처까지 퍼진 꾸찌땅굴의 길이는 215킬로에서 250킬로 정도 된다고 했으니 서울-부산 간의 반 정도의 길이가 된다. 땅굴 속에 숨어 은신도 하고 생활도 하면서 전쟁승리를 꿈꾸었다. 북한의 군대는 김정일의 공격명령만 떨어지면 죽음을 불사하고 공격할 것이다. 김정일은 호지민전법을 답습하고 있는 겻이다.

셋째, 경제개발을 꿈꾸며 후진국에서 벗어날 때이다. 미국돈 1달러는 21.000동이다. 중산층 월 봉급이 110만동이니 50달러정도 수준이다. 남부의 젖줄인 사이공강, 메콩강은 오물 투성이었다. 86아시아경기, 88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강이 변화된 것을 빨리 답습했으면 한다. 국가의 체제가 아직 사회주의요 군부가 장악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군부는 발전, 개발, 부흥에 일
찍 눈을 떴는데 그들은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부디 베트남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고, 잘사는 국가가 되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국가가 하루속히 되기를 바라고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