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날은 간다

2011-04-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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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50년대 여가수 백 설희씨가 불러 널리 유행한 유행가 노래 가사다.무릎을 넘어 쌓였던 눈도 봄바람이 부니 며칠 만에 다 녹아 없어지고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버들강아지가 매달린다. 봄이다. 노래가사처럼 연분홍색 봄이 바람에 날려 오니 여인들의 마음이 연분홍색으로 변한다. 화려하다. 골목길도, 대문이나 창문도 모두 화려하게 보인다. 봄은 그러나 짧다.

파란만장하다는 인생에 있어서도 봄은 있으나 그 봄은 사라져 기억 속에 아련할 뿐 그 봄은 길지가 않다. 살면서 겪는 좋지 않은 일은 기억으로 남고 좋은 일은 추억으로 남는 일상들이 봄에는 모두 아지랑이가 된다. 봄에는 할 일이 많다. 농부는 씨를 심어야 하고 가정주부는 대 청소를 여러 번 해야 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가게의 내용을 말끔하게 다시 정리를 해서 손님 맞을 준비를 새롭게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롭게 단장을 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얼굴은 환해야 한다. 아무리 사회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봄의 얼굴처럼 화사하고 화려해야 한다. 그리고 웃으면서 살아야 한다. 비록 잠시일 망정 거리도 화려해야 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꺼리도 화려해야 한다.


봄은 우울하거나 처지거나 찌그러진 얼굴로 오지 않는다. 웃으면서 온다. 꽃잎들이 웃으면서 맞장구를 치며 활짝 피는 까닭이 웃으면서 오는 봄 때문이다. 웃는 얼굴에다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인들은 우리더러 장사를 하면서도 왜 얼굴이 그렇게 성난 사람처럼 표정 없이 굳어있느냐고 말한다. 점잖아야 하는 방법으로 표정 없는 얼굴을 지적한 공자의 죄가 크다.
요사이 표정도 없고 염치도 없는 얼굴로 나부끼는 얼굴은 휘발류 값이다. 휘발류 값이 이렇게 오른다는 것은 미국의 봄이 다 간다는 증조이다. 이차 대전을 계기로 경제 부흥이 시작되다가 한국전쟁 덕으로 미국경제가 화려하고 따스한 봄맛을 보더니 이제는 미국의 봄이 다 가는 듯하다. 식품점에 가 먹을거리를 사려해도 예전처럼 마음 놓고 집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식품가격이 올라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올랐다. 일차상품이 이해가 가지 않게 오르면 그다음 이차 삼차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길을 가다 보면 빈 가게가 점점 늘어가고 세를 놓는다는 광고만 유리창에 매달려 하품을 한다. 경제가 맹세이고 부강이 맹세인 미국의 봄이 어디로 가는지 간다. 미국의 맹세를 하늘같이 믿고 온 이민, 앞으로는 더위에 허덕이다가 사정없이 뺨을 때리는 혹한을 견뎌야 할는지 모르는 이 도시속의 우리들.미국의 기름 의존도는 세계의 제일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도. 자동차도, 비행기도, 각종 공장의 가동력도, 모두 기름에 의존한다. 만약 한 달만 기름이 없다면 미국은 모든 것이 마비되고 국가가 멸망한다. 그 대신 불편하게 살아온 가난한 사람이나 미개한 방법으로 살아온 원시 방법은 사람을 살아남게 하는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기름에 의존한 편리한 방법만이 최선이 아니다. 나뭇가지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커네티컷 야산으로 수염도 깎지 않은 덥수룩한 미국
인 한사람이 로프를 가지고 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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