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복잡한 듯 보여도 단순한 사실

2011-04-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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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경제팀 차장대우)

2008년 금융대란에 관한 의회 보고서가 지난주 발표됐다. 5,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의 분량이 100여페이지에 달하고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도 5페이지에 이른다. 보고서는커녕 이를 설명한 기사를 다 읽기에도 벅찰 지경이다. 마치 이런 고민을 덜어줄려고 만든 것 같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알기 쉽게 풀어낸 영화 한편이 때 맞춰 DVD로 출시되어서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인사이드 잡(Inside Job)’이다.

영화의 내용도 유익했지만 직접 인터뷰어로 출연한 찰스 퍼거슨 감독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현대의 금융 거래는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금융대란의 원인은 정말 단순하고 간단하다. 금융인들의 탐욕과 도덕적인 타락, 이를 방치한(어떤 의미에서는 공조한)관료들의 나태함이다”고 강조했다. 거의 같은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러브스토리’보다 ‘인사이드 잡’을 추천하는 것은 퍼거슨 감독에게는 마이클 무어 감독과 같은 선동가의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MIT에서 박사를 받았고 ‘프론트페이지’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MS에 1억달러에 판 미국의 주류계층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전형적인 강남좌파라고 할까? 대공황 이후 1980년까지 40여년동안 미국에서 대규모 금융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정답은 ‘한 번도 없었다’이다. 규제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 이후 30년동안 미 금융정책의 기조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규제를 풀어라”였다. 결과는 주기적으로 터진 대형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막대한 지원(피 같은 우리의 세금)의 반복이었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고 현재와 미래다. 생난리를 겪고 나서도 월가에 대한 규제와 개혁은 수많은 반대와 난관에 처해있다. 은행이 고객의 돈으로 투기하는 행위는 절대 막아야한다. 회사를 말아먹고 고객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장이 처벌을 받기는커녕 수억달러를 챙겨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연한 조치들이다. 그런데 이게 영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권력의 이익을 위해 당연한 일을 안 당연하게 만드는 이들, 모든 규제를 자유시장의 적으로 몰아가는 이들 때문이다.

말로 먹고살고 글로 먹고 사는 이들(로비스트, 변호사, 경제학자, 언론인, 정치인 등)이 늘 간단한 현상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 지도층이다. 그래서 평범한 국민들만 늘 봉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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