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증샷 강박증

2011-04-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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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고 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하루라도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할 정도로 컴퓨터를 끼고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신(新)조어들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원래 유행어는 영화, 드라마, 연예오락 프로, 코미디, CF 등 대중문화 콘텐츠로부터 쏟아져 나와 그 중 그 시대와 딱 어울리는 단어나 문장이 대중의 인기를 타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자주 사용하던 단어와 문장들이 있다. 바쁘다 바뻐, 부자 되세요, 잘났어 정말, 너나 잘하세요, 빵꾸똥꾸야, 간지 난다, 엣지있게 등의 문장과 된장녀, 루저, 꿀벅지, 베이글녀, 초콜릿 복근 등의 단어를 기억할 것이다.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나온 까도남, 따도남 등과 현빈의 대사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또 한창 인기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수퍼스타K’ 심사위원의 ‘제 점수는요, 60초후에 공개하겠습니다’는 말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세태를 반영해오고
있다.


그 중 촌철살인의 유행어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해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특정인을 비하하거나 외모지상주의 현 시대상을 반영한 단어는 거부감과 부작용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인터넷 시대에 가장 보편화된 단어는 종결자와 인증샷 인 것같다. 종결자는 대적할 상대가 없
이 뛰어난 자, 어느 한가지가 남들보다 우월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그 일에 관한한 끝맺음을 뜻하는 자를 이른다. 워낙 널리 쓰여 더 이상 거론할 필요도 못느낄 정도다. 이 중 인증샷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인증(認證)이란 어떠한 행위 또는 문서의 성립이나 기재가 정당한 절차로 이루어진 것을 공적 기관이 증명하는 것이다. 거기에 네티즌은 사진을 첨가하여 인증샷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다이어트 중인 개그맨이 운동하고 있는 사진을 올려놓고 다이어트 인증샷, 미모인 연예인 두명이 같이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우월미모 인증샷, 나이에 비해 피부가 좋은 여배우는 미친동안 인증샷, 그 외 일반인들도 질 세라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자연미인 인증샷, 생일선물이나 맛있
는 음식, 상탄 트로피까지 올리고 인증샷을 남발하고 있다. 때로 인증샷 가짜나 자작극 인증샷이 발생하는 무개념, 무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꼭 누군가에게 인증 받고 말겠다는 강박 심리가 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각종 인증샷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한 일을 내가 인정하면 그만이지, 왜 누구한테 인정을 받겠다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가족과 친구에게 나아가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 유투브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랑해야 그것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그런 인증샷은 꼭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V자로 벌려 히 웃으면서 이빨 드러내고 찍은 사진이 많다. 물론 최근 정보 통신 네트워크 이용이 급증하고 인터넷을 통한 각종 거래가 국내외적으로 보편화 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비즈니스가 많다보니 정보망 안전과 개인 정보의 유
출을 방지하기 위해 공인 인증서(Public Key certificate) 제도가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세태가 그렇다보니 작은 것 하나라도 사람들에게 인증받고 싶은 마음이 별 용도도, 가치도 없는 일에 매달려 안간 힘을 쓰게 하는 것 같다.아뿔사, 그런 생각을 지닌 나 역시 여행을 갔다가 유명 건축물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브이 자를 그리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엔 생소하기 그지없어 낯설고 거북하다가 인터넷상에 인증샷이 흘러넘치다보니 어느새 동화되어버리고 유사시 자신도 모르게 불쑥 따라하고 마는 것이다. 테이블에 올려진 요리가 예쁘고 먹음직스러우면 ‘인증샷 올려야지’하고 스스럼없이 카메라를 꺼내드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아무래도 시대 변화에 따른 유행을 비껴가기는 힘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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