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학생들

2011-04-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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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시험결과 얻은 성적보다 학생들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작은 칭찬과 격려가 학업성취도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연구조사가 발표돼 관심을 끈 적이 있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는 우수한 시험성적을 받았을 때 상금을 주기 보다는 평소 숙제를 잘 했거나 책을 읽었을 때, 또는 학교에 결석이나 지각을 하지 않았을 때, 교사를 도와 학급일을 거들었을 때 등에 기준한 평가가 학생들의 학습욕구를 자극해 결과적으로 학업성취도를 크게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의 카이스트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학생 자살 사건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에 무엇이 정말 효과적인지 학교측이 이를 잘 간파하지 못해 빚어지는 결과가 아닐까. 학생들의 성적에 따른 등록금 배정이 이에 부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수치심과 좌절감에 더 이상 학교에 머물지 못하도록 만들면서 낭떠러지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학업과 살기를 포기하고 벼랑끝에서 몸을 던진 카이스트 학생들은 올들어 벌써 4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일등제일주의로 치닫는 한국사회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오로지 성적, 성적만을 강조하는 학교측과 교수, 그리고 학부모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학생자신의 개성과 적성, 특기는 어디가고 없는 한국교육계의 불행한 현실이다

일련의 카이스트 학생 자살사건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사건이 비록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이곳에서 공부하는 한인학생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미국이라 할지라도 일부 한인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로 보아 한국이나 이곳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도록 다그치고 밀어붙이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관심 속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교육보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선에서 그칠 뿐, 부모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100% 다 나온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예일대 중국계 에이미 추아교수가 신문에 기고한 자녀교육법 ‘타이거 맘’이 미국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강압식 교육법이 일정부분 부모가 하는 대로 자녀가 무조건 따라줄 지는 몰라도 그렇게 한 공부가 과연 그 아이의 정서나 사회적인 적응 면에서 합당한 교육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추아교수의 큰 딸은 이번에 그의 주장처럼 강압식 교육을 한 대로 명문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는 결과를 낳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꼭 그 아이의 인생에서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성적 외에도 보이지 않는 인성이나 가치관 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하버드나 예일, 코넬 같은 명문대학에 들어간 한인학생들 가운데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절망감과 좌절감에서 자살을 선택한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사회는 꼭 일등, 반드시 일류대학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도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웅이 되었거나 성공한 인물이 된 사례가 많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여유와 배려, 행복이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칭찬이 얼마나 유익하면 고래까지 춤을 추게 하겠는가. 행복하다 느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전인교육을 배제한 성적만을 고집하는 교육으로는 아이들을 계속 불행하게 만들면서 죽음의 길로 내몰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는 참교육의 원칙을 ‘에밀’에서 찾고 싶다. 루소는 “아이들이 스스로 천부적이며 자연적인 본성을 배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한 인간이 온전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능이 아닌 자율과 개성을 강조하는 미국식의 합리적인 교육방식과도 통하는 말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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