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2011-04-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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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누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심혈을 기우며 존재하는가? 논밭에서 사시사철 농사를 지으며 일하는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선생님들, 예술가들, 새벽부터 해 저물녘까지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명분과 일을 손에 달고 다닌다. 거기에는 그럴듯한 명분과 구호가 따른다. 이민이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여기에서 사는 우리가, 아니 내가 나를 보자. 내가 아무런 명분이 없고 아무리 약해도 나는 내가 지켜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지 남더러 지켜달라고 해도
지켜주지도, 지켜지지도 않는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이 태평양 동쪽에 작전 방어선을 설치할 때 알류산 열도를 이용하여 남으로 뻗어갔는데 그 방위선이 대만해역까지 선을 그으면서 내려갔다. 미국의 하지 중장이 대한민국의 미 군정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정치경제에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며 위세 떨치면서 있었는데도 우리나라는 그 방위선 안에 들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을 나타냈었다. 그러던 것이 6.25 전쟁이 일자 미국은 지리적으로 미국을 방어하는데 한국 땅의 중요성을 알고 미국의 동태평양 방어선을 수정하여 한국을 미
국의 작전권우산 안으로 끌어넣었다.

그리고는 서로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동맹이라는 이름아래 지금까지 관계가 유지되어 왔지만 구걸은 언제나 한국 쪽에서였다. 우리가 약자였기 때문이었다. 관계란 다 그런 것이다. 우정의 관계도, 사랑의 관계도, 사회 안에서의 인간관계도 조직의 관계도, 국가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이어지는 우열의 관계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어느 쪽이든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관계는 소멸한다. 그러니 받는 것도 좋지만 위세 좋게 주는 쪽이 더 좋으니 주는 쪽으로 성장해 나갈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음에 여유를 다 채울 길 없는 이민생활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는 것 없이 내가 하는 일마다 나에게 무엇인가가 올 것이라고 기대를 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 관심을 쏟고 있고 과연 나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까? 아니다. 그래서 모든 일은 힘이 드는 것이고 신이 나지 않는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비웃으며 월남을 통일한 호지명은 한평생을 신이 나게 살았다고 했다. 남이 자기를 지켜 주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세우는데 집착했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칼튼 호텔 식당에서 버스보이로 시작한 호지명은 접시닦이를 했다가 요리사로 승진을 했고, 얼마 있다가 요리사에서 주방장으로 승진을 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배우고 월맹으로 돌아갔다.

호지명은 말한다. “무슨 일이던지 나를 위해서 있게 하라!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을 내가 소홀이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호지명은 월맹도 자기를 위해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고, 그래서 혼신을 다해서 월맹군을 키운 후, 중국 공산당의 원조도 마다하고 자신의 힘으로 막강한 미국을 몰아내고 월남을 통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월맹을 자기를 위해서 있게 한 호지명, 비록
공산주의자이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생각을 해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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