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적인 삶과 수명

2011-04-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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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 논설위원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서였다. 그리고 같은 동갑나기 목사의 부음 소식은 들었지만 일이 있어 가 보지를 못했다. 그는 암으로 고생을 하다 대수술 후 경과가 좋아서 성전도 아주 아름다운 곳으로 이전하는 등 목회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재발하여 그만 세상과 이별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은 순서가 없다란 말이 있다. 오래오래 살 것 같던 강건한 사람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골골 하면서도 80, 90을 넘기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의 수명이란 하늘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환경과 직업에도 영향이 있음을 간과할 순 없다.

지난 4일 한국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팀이 국내 11개 직업군별 평균수명 비교분석 결과를 지상을 통해 발표했다. 이 분석은 1963년부터 2010년까지 48년 동안 언론에 실린 3,215명의 부음기사와 통계청의 사망통계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통계를 보면 어떤 직업군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를 알 수 있다. 평균 수명을 보면 1위가 종교인으로 80세다. 2위는 정치인으로 75세며 3위가 교수로 74세, 4위는 기업인으로 73세, 5위가 법조인으로 72세다. 6위는 고위공직자로 71세, 7위가 연예인과 예술인으로 70세며 9위가 체육인·작가·언론인으로 67세다. 1위로 분석된 종교인과 9위로 분석된 체육인·작가·언론인과는 13년의 차이가 난다.


48년간의 통계는 이렇게 나왔지만 지난 10년간(2001년-2010년)의 통계는 조금 순위가 다르다. 1위는 역시 종교인(82세)으로 변동이 없다. 2위는 정치인(79세)과 교수(79세)다. 3위가 법조인(78세)이며 4위가 기업인(77세), 5위가 작가·고위공직자·예술인(74세)이다. 6위가 언론인(72세)이며 7위가 체육인(69세), 8위가 연예인(65)이다.꼴찌였던 언론인이 연예인과 체육인을 넘어 7위가 되어있다. 늘 마감시간에 쫓겨 스트레스로 살아야 하는 언론인들이 조금은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반면, 70세였던 연예인이 65세로 꼴찌가 된 것은 의아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연예계가 60년대부터 90년대보다 더 치열한 경쟁구도로 변해 그만큼 연예인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내의 통계를 미국의 한인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물론 직업부터 적용하기가 힘들다. 미국에서의 직업이란 한국과 같지 않다. 한인들의 직업에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교수 또 예술인, 작가, 언론인, 체육인, 연예인 등은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 내에서 특히 이민 온 종교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아마도 한국과는 다를 것이다. 한국의 예이지만 종교인들은 어떻게 그리 오래 살수가 있을까. 연구팀들의 의견은 성직자가 장수하는 이유로 첫째 신체적으로 규칙적인 활동과 정신수양, 둘째 정신적으로 가족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고, 셋째 과욕이 없고, 넷째 사회적으로 절식·금연·금주의 실천, 다섯째 상대적으로 환경오염이 적은 곳에서의 생활 등을 꼽았다.

종교인, 즉 성직자를 떠나 종교를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과의 차이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하더라도 종교에 귀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장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규칙적 활동과 정신수양, 가족관계, 불 과욕, 절식과 금연·금주 등은 일반 신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에 그렇다. 결혼 잔치 집에 가면 새로운 둥지를 짓는 젊은이들의 기쁨 속에서 자신의 젊었을 때를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장례식에 가면 더 많은 것을 느끼며 생각하게 한다. 장례식에선 종교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인간의 덧없음과 허무함.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등등. 인간세계에 종교가 필요한 것은 이런 인간의 한계속성 때문이리라.

사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말은 삶의 길이보다는 삶의 과정, 즉 질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세상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세월들이다. 오늘 하루하루가 새롭다. 늘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하면서도 그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약함 속에서 종교적인 삶은 우리에게 더 필요한 장수의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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