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위생등급제와 주홍글씨

2011-04-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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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 (경제팀 기자)

나다니엘 호손이 쓴 ‘주홍글씨’라는 소설이 있다.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가슴에 붙여야 하는 주홍글씨 ‘A’는 간통(Adultery)의 약자다. 그러나 A가 가진 의미는 더 크다. 그녀의 죄를 상징하는 꼬리표다. ‘주홍글씨’는 식당위생등급표시제가 실시되기 전 이를 반대하던 뉴욕주 레스토랑협회뉴지시
지부관계자들, 뉴욕시 식당 업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다. 이들은 A, B, C로 나뉘는 등급표시제에서 업주들이 B나 C를 받을 경우 꼬리표로 작용, 식당의 존폐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은 조금 방향이 빗나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B나 C를 받은 업소들이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A등급을 받은 업소들이 이를 홍보해 고객 몰이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B나 C를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매상이 절반이상 떨어졌거나 폐점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반면 예상치 못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퀸즈의 한 식당 업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를 받은지 넉달도 안돼 검사관들이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검사에서는 20점 가까운 점수를 받은 업주는 재검사를 신청했고, 결국 재
검사에서 A를 받고 무사히 통과해 한시름 놓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A등급을 받은 지 얼마 안돼 이 업소는 갑자기 들이닥친 검사관들로부터 60점이 넘는 벌점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 A를 받았다는 롱아일랜드시티의 한 업주도 “A를 받은 이후 검사관이 4-5번은 더 왔다가면서 결국 일시 폐점 명령을 받았다”며 시청에 항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뉴욕시 보건국은 위생등급표시제 실시를 앞두고 여러 차례 세미나를 하면서 식당업주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보건국은 A를 받은 업소는 1년, B는 받은 업소는 6개월, C를 받은 업소는 4개월동안 다시 검사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검사를 통해 등급을 받았을 경우에 대해서는 구체적
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결국 A를 받으면 1년 동안 검사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업주들에게 독이 된 것이다. 재검사를 통해 A등급을 받은 업주들은 잦아진 검사 때문에 장사를 제대로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우려와는 반대로 A등급이 식당업주들의 주홍글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위생 상태를 재점검해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낮은 등급의 식당보다 검사의 표적이 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식당 위생 등급 표시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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