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도는 우리 땅

2011-04-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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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노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1983년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은 그해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는 일본의 억지 주장에 맞서 전 한국민을 하나로 응집시켜 버렸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배웠고 그것은 진리임을 믿는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평생의 교육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번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사건이 더욱 우려된다. 이제 막 영토개념과 역사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린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미화시킨 그릇된 역사를 주입시켜 어쩌자는 것인가.

이번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모든 지리교과서와 역사, 일반사회 교과서에 ‘독도가 1905년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됐다’며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기술했고 일부는 1952년 이후 ‘한국정부가 불법 점령 중이다‘고 표기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중학생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기술된 지리 및 사회 과목을 공부한다. 이렇게 배우고 믿는 일본 아이들이 자라 장차 한국 아이들과 부딪칠 때 얼마나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울 것인가. 거기에 무슨 용서가 있고 화해가 있고 융합이 있겠는가. 여기서 1905년에 주목해 보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압박,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했다. 그해 2월22일 일본은 ‘시네마현 고시 제40호’에 의해 독도를 불법으로 편입조치했고 5년뒤인 1910년 한국을 합병했다.독도가 일본 침략 최초의 희생지가 된 것이다. 해방과 더불어 우리가 되찾은 땅 독도를 자기
것이라는 주장은 아직 그들이 군국주의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의 영토를 침략 중임을 여실히 보여준다.일본은 1950년대부터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시작하더니 1977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족되고 2000년대 들어 정부 고위층의 망언이 수시로 터졌다.

항상 독도 문제는 민감한 사안인 것이 너무 요란한 대응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 원래 한국 것 아냐? 자기 자식 자기꺼라고 목소리 높이는 것 보니 뭔가 꺼리는 것이 있나’하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노리는 것이 이것이다.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간주하여 유엔의 국제사법 재판소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1951년 일본이 집요한 막후 로비를 통해서 회담에 참가할 연합국 명단에서 한국을 승전국의 지위에서 지워버린 역사가 있다. 그래서 일본은 연합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분명히 규정한 조항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지금까지 줄기차게 독도 영
유권 주장을 하고있다. 그 어느 강대국도 믿지 말고 우리는 독도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정부는 독도영토관리대책단 회의를 열고 해양과학기지 건설, 방파제 건설, 선착장 확대는 물론 7월 완공예정이던 독도주민 숙소 완공을 5월로 당기는 등 독도의 실효적 지배 강화에 나섰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2시간 반 거리로 바람 불고 파도 높은 땅이지만 주변에 황금어장이 널려있다. 현재 독도주민등록 인구는 4명, 1999년 범국민 독도호적 옮기기 운동으로 2,205명(2009년 7월말기준)이 독도에 등록 중이라는데 거주공간 확장, 어업 장비 및 시설 보조 등 독도주민우대정책을 실시하면 은퇴한 해외동포 중에도 갈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실제로 가진 땅에서 적극 드나들면서 살고 있으면, 우리집에 부모 자식이 들락거리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는가.

이번 교과서 왜곡건은 일본 동지진에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던 한일우호 협력의 손길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이재민은 도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독도수호성금을 따로 걷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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