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수재림 유감

2011-03-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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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말은 즉 ‘칸트가 인식이 대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상이 사람의 이성에 의존하여 가능하다’고 한 것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종래의 정설과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움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봄이 우리에게 찾아온 게 아니고 우리가 봄을 찾아가는 것’이 지동설의 이치이고, ‘그래도 내일은 해가 뜰 것이다’는 말도 사실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
는 말이 된다.

지난 겨울은 너무나 춥고 길어 정말 우리가 봄을 찾기가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야 옳다. 나는 지금 ‘봄이 찾아왔건만, 우리의 현실은 왜 이런가? 하여 마치 죽음을 맞이한 선지자처럼 하나님 앞에 불평을 털어놓을 참이었다.
악과 불의.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 절대빈곤과 상대빈곤의 불협화음 그리고 일들이 잘 풀리지도 않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좌절된 생각들이 꽃을 피우면서 찾아준다던 그 봄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이런 현실 속에서 메시아가 오길 기다렸고 또 사실상 메시아란 해가 이스라엘 동쪽 갈릴리해변에서 떠서 갈보리 서쪽 언덕으로 졌다고 표현한다면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사실이지 우리도 그 진 해가 다시 동쪽으로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신학 현주소가 아닌가.
세상이 좀 어수선하면 우리네 해바라기 인생들은 그때마다 종말이니 말세니 하면서 긴장한 것이 어디 오늘뿐인가.


세상사 윤리와 율법과 종교들이 동서고금이 다 비슷하듯 천국과 지옥을 통하여 권선징악 및 보상의식은 당연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성일 수밖에 없다. 예수를 몰랐던 이씨 조선 어느 이름 없는 소설가도 수절하는 춘향을 동정한 나머지 이몽룡을 메시아로 변신시켜, 변학도를 심판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당시 억압당하는 이조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선물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천동설을 믿는 혈통이 남아있어 게으르고 막연한 점들이 없지 않다. 우리가 메시아를 찾기보다 메시아가 우리를 찾아주길 바라는 기대가 예수의 재림이 주는 교훈을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살고있는 현주소에 마치 예수를 다 잃어버리고 탈진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예수의 재림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지연되었다. 그 지연의 덕분으로 천만다행히도 예수의 4복음이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
고 그것을 우리는 굿뉴스 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메시아로 불리는 예수, 그는 비밀이 없는 우리의 친구이지만 단 한 가지 그의 프라이버시 즉, 재림만큼은 입을 깨물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잠잠했던 것같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는데 요즈음 예수의 재림이 2011년 5월21일, 오는 2012년 12월21일설 등의 일기예보를 들으며 마치 1950년대 공신력 다 잃어버린 한국의 기상 관측소에서 청취자를 번번이 실망시켰던 그때 그 일기예보를 다시 듣는 기분이다. 그 동안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다 하여 의기양양, 남극이니 히말라야 산등지로 다니며 깃발 꽂으며 자랑을 했지만, 이번 도적과 같이 찾아온 천재지변들을 목격하면서 나는 살아있는 신의 음성을 확실히 듣게 되었노라고, 니체의 무덤에 달려가 말하고 싶다.

그리고 죄지은 인간 특히 하나님 앞에 과학자랑 하는 오만한 인간들의 무능한 모습을 목도하였고 ‘진노의 날’에 과연 이런 형태로 나타날까 생각하니 몸서리 칠 수밖에 없었다. 성탄절은 예수가 죄인의 친구로 웃으시며 오신다기에 모두 손꼽아 기다리며 달력을 넘기지만 재림은 문제가 다르다. 즉, 예수가 죄인들의 심판자로 오실 것이기에 그날엔 더 이상 넘길 달력이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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