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얻은 것의 무게와 미래

2011-03-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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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일본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택시 운전기사의 첫 마디였다. 그는 필자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저 그의 느낌이 흘러나온 것이라고 본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일본이 겪고있는 아픔이다.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무력함이 여실히 나타난 지진과 쓰나미의 합작이었다. 거기에 이어서 펼쳐지는 일본인들의 극기와 자제, 집단생활의 질서 등은 놀랍고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일까. 가끔 자연을 정복하였다는 말이나 글을 만난다. 과연 서로 정복하고 복종하는 관계일까. 그러기에는 서로의 관계가 끝없이 밀접하지 않은가.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고, 활용하고, 도우며, 자연은 인간에게 규칙적인 변화를 통하여 우주의 운행 이치를 깨닫고 거기에 순응하며 본모습대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다가 사람은 가끔 장난기를 내고, 자연은 가끔 심술꾸러기가 된다. 동일본 대지진은 그 자연의 더없이 심술궂은 장난이었다. 마치 때가 되어서 펼친 자연의 운동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처럼 거기에 순응하여 앞날을 개척하는 일본인의 가라앉은 생활 태도는 어디서 길러진 것일까.


그 동안 다른 지역의 재난을 겪는 모습에서 적나라한 벌거숭이 인간상을 보아왔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혹자는 그것을 일본의 무사도와 관련 짓는다. 또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의 영향을 말한다. 일본교육의 중점은 공중도덕이었다. 일제시대를 체험한 사람은 ‘전체를 위한 개인의 삶’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었음을 알고 있다. 이런 교육이 소위 전체주의 국가를 이루고야 말았다. 극단적인 충성의 예로는 국가를 위해 어린 나이에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몰고 적의 전함을 격침시키고 산
화한 소년병들을 낳았다. 그 정신이 2주내 사망 가능성이 적잖다는 후쿠시마 원전 결사대에 자원자들이 모여들게 하고 있다. 자원자들이 그 전후 사정을 알리며 양해를 구하면 가족들은 “믿고 기다리겠다” “자랑으로 압니다”라고 그들을 격려한다. 숭고한 정신의 세계이다.

동일본 대지진은 미증유의 대사건이며 일본인들이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얻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나라의 품위를 높혔고, 세계의 우정을 모았다. 세계인들은 돌발 사건을 당하여 보여준 재난 처리 능력에 감명을 받아서 일본 돕기에 나섰다. 끈질긴 반일 감정까지 흘려버리고 일본 돕기에 나선 한국, 전쟁 희생자 위안부까지 앞장서 돕자고 부르짖는 한국의 예를 보자. 또 여러 나라에서 보내는 재해 구조대, 구제품과 헌금, 격려 메시지...등 일본은 모두의 관심거리며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은 분명히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들이 세계 제2차대전에 패망했을 때의 전국적인 처참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그들에게는 무서운 끈기와 샘솟는 에너지가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한데 뭉치는 마음이 있다. 일본은 이것을 밑받침으로 하여 다시 일어날 줄 안다. 그러기를 바란다.“일본 뉴스를 보았나요? 어떻게 생각하였어요?” 학생들은 의견을 말하였다. “무서워요. 쓰나
미도 지진도” “모두 휩쓸어 갔어요” 정말이다. 집이나 자동차가 장난감처럼 떠내려갔다. “가족이 중요해요.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빨리 찾기를 바래요” “일본사람들은 차례를 잘 지켜요” ‘지진을 피할 수 없다면, 미리 알고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 좋겠어요” 어린 학생들에게도 각가지 의견이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만 잃고 얻은 것이 아니고, 우리도 얻은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가 이번 사태를 가리켜 ‘사람들이 세탁기 속에서 시달렸다’는 표현을 하였다. 이제 세탁기는 돌아가던 힘을 멈췄고,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서 새 살림을 꾸린다. 새 희망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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