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동 한그릇’

2011-03-25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요즘은 드라마나 연예오락 프로, 심지어 빠짐없이 챙겨보는 날씨 예고보다 그새 무슨 일이 터지지 않았나 하여 뉴스 시간을 기다린다.리비아의 카다피는 언제 항복할 것인지,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원전 사태는 언제 완전히 해결될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한 것은 지난 12일,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편서풍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지난 17일 미 캘리포니아에 이어 22일 아이슬란드, 23일 유럽 대륙을 거쳐 다음달 2일쯤에는 한반도 상공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4일에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1~4호기에서 수증기가 올라온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새어나온 이 방사성 물질이 일본에 우유와 수돗물 공포, 전세계를 먹거리 공포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23일 미 연방식품의약청(FDA)은 일본 방사능 피해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와 유제품, 채소, 과일 등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뉴욕에서도 일식당 업주들과 일본 식료품 업자들은 물품 공급에 어려움을 느끼고 소비도 급감하고 있다. 업자들이 해산물 사재기에 나서면서 일본산 해산물뿐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해산물까지 함께 가격이 오르고 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한인마트에서도 소비자들의 일본 수입 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어 방사능과 전혀 상관없는 미국 현지 생산의 일본 브랜드 식품까지 불신하고 있다. 현재까지 유통되고 있는 일본 제품은 지진 이전에 출고된 제품이라 방사능과 관련 없으며 일본
생산품이 미국으로 들어오기까지 30~45일이 걸려 지금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 해도 일단 소비자들은 일본 식품 구입을 기피하게 된다.

지난 2007년과 2008년 중국산 살충제 냉동만두, 골판지 만두, 중국산 분유 멜라민 공포로 인해 ‘메이드 인 차이나’제품이라면 아예 건드리지 조차 않던 공포가 일본산으로 옮겨 갔다.오늘처럼 진눈개비가 내려 궂고 스산한 날이면 일본우동 국물이 생각날 때가 있다. 깊고 은은한 국물 맛이 최고인 김이 술술 오르는 우동그릇을 앞에 놓고 이걸 먹어? 말어? 하고 망설이게 되니, 참으로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마실 물이 모자라고 하루 종일 우동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티며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일본 이재민들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하다. 가쓰오 국물 우동, 가께 우동, 유부우동, 튀김우동, 각종 채소와 해산물 우동, 가마보코 우동 등등, 일본인들은 하루 세 끼에 간식까지 모두 우동을 먹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우동을 좋아한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 이라는 소설이 있다. <작은 우동집 ‘북해정’은 해마다 12월 마지막날이 되면 손님들로 붐빈다. 가게가 문을 닫을 무렵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가 들어와서 단 한그릇의 우동을 시킨다. 우동집 주인은 이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몰래 우동 1인분 반을 삶아서 가져다준다. 맛있게 먹고 간 세 모자는 다음해, 그 다음해도 나타난다. 그때마다 우동은 주문한 양보다 더 푸짐하게 삶아져 식탁에 나간다. 그후 10년이상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해 섣달 그믐밤 우동집에 나타난 세 모자,
그들은 떳떳이 세 그릇의 우동을 시킨다. “우리는 14년 전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한그릇의 우동을 시켰지만 고맙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큰소리로 말해주는 목소리가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하는 기분을 들게 했지요. 셋이서 손을 맞잡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며 장성한 아들과 어머니는 우동집 주인이 베풀어주었던 따뜻한 배려에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모두 괜한 걱정 털어버리고 이 ‘우동 한그릇’을 피해 지역 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