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기를 각오한 영웅들

2011-03-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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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어느 소방서앞을 지날 때면 죽은 소방관들을 기리기 위해 꽃을 오랫동안 세워두고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생명을 구하려다 불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두고두고 기리기 위함이다. 미국은 영웅에 대한 개념이 잘 서있는 나라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전투중 아군이 잘못 쏜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영웅으로 간주한다. 어떠한 이유이건 간에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은 당연히 영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나라를 위해서나 남의 목숨을 구하려다 죽은 사람을 사회전체가 영웅시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시민들과 그 자녀들이 모두 그의 죽음에 대해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갖게 한다. 이런 정신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간직하고 자라 훗날 이들도 사회나 국가에 어떤 어려움이 닥칠 때면 너도 나도 죽음을 마다하고 기꺼이 뛰어든다. 20여 년 전 워싱턴 D.C. 포토맥 강가에서 항공기가 추락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이 인명을 구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언 강가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조한 일이 있다. 당시 상황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미국인들의 이런 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위기시 남을 구했다고 하면 사회전체가 그를 영웅시하는데서 나오는 자연발생적 현상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목숨을 걸고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거나 강도만난 사람을 구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으레 그들을 영웅이라 칭하는 것을 보아 왔다. 한 실업자가 지하철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뛰어들어 목숨을 구한 일이 있었다. 미국사회는 그를 영웅시 하면서 학교를 순회하며 내가 어떻게 사람을 구했는가 설명하도록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희생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어릴 때부터 배워온 이런 영웅에 대한 히어리즘(Heroism)이 오늘날 미국을 위대한 나라, 위대한 사회, 위대한 국민으로 만드는 원동력이자 원천이 되고 있다.


지금 일본의 원전복구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181명도 바로 이런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아니면 목숨을 헛되이 버리지 않는다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방사선 피폭이라는 엄청난 위험도 불사하고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고 자국민을 살려내기 위해 죽음의 굴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정신이 일본을, 아니 전 세계를 방사선 재앙에서 건져낼까 온 나라가 지금 며칠 째 손에 땀을 쥐며 그들의 눈물겨운 사투를 지켜보고 있다. 죽음의 공포도 뛰어넘은 이들의 헌신적인 정신은 졸지에 가족과 이웃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는 수십만의 이재민과 방사능 유출로 농작물과 해산물, 마시는 물까지 오염돼 불안에 떨고 있는 수많은 일본인들의 삶에 한 가닥 빛과 희망이 되고 있다.

한국은 요즘 일본의 재난피해를 돕기 위해 곳곳에서 성금 모금을 하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뿌리깊은 정신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궁금하다.한국은 이제 점점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위급시 국가나 누구를 위해 몸을 던진다는 사고는 아예 바라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돈 있거나 권력있는 기득권층이 마땅히 해야 할 ‘노블리즈 오블리제’ 정신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고, 그들의 자녀는 병역을 기피하고 부정입학 등 한국의 젊은이들은 비리가 난무한 속에서 자라고 있다.

어느 사회든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그 정신을 배우며 자라게 된다. 위대한 사회가 되려면 그 사회에 영웅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한국은 기껏해야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이 영웅으로 떠오를 뿐 영웅이라 불리우는 인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있는 각 분야의 영웅적인 인물마저 조금만 실수해도 짓밟고 없애 버리지 못해 난리들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국가를 구하려고 나선 이번 일본 결사대의 결연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들은 정말 많은 것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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