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명성이 결국은 문제다

2011-03-2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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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벨탑을 쌓은 것인가. 매일 같이 전해지는 소식은 불길한 뉴스뿐이다. 현장은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돼 있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원전을 구하기 위한 사투가 계속되고 있다. 그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문득 스치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할 말 조차 없었다. 천지불인(天地不人)이라고 했던가. 자연은 인간에게 너그럽지 않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짚으로 만든 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 그대로였다. 대지를 가르는 대지진에다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검은 파도의 흉흉한 기세에 그저 망연할 따름이었다.


그 바로 뒤에 전해진 것은 하나의 문화적 쇼크다. 그 엄청난 재앙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는다. 흑암과 절망의 한 가운데 있다. 그런데도 울부짖음은 들리지 않는다. 슬픔을 안으로만 삭이면서 결코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다. 그 일본인들의 모습을 세계는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화(禍)가 어떤 면에서 복(福)이 됐다고 할까. 일본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아시아지역에서는. 대지진이 그 일본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엄청난 대재앙 속에서도 의연한 일본 사회’- 사람들은 일본을 달리 보게 된 것이다.

그 일본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전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처음에 미국지원 받아 들였다면…오판이 원전사고 키웠다” 이 글을 쓸 무렵 전해진 한국 내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사태를 너무 안이 하게 보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지적도 나온다. “회사 이익만 생각한 도쿄전력의 교묘한 말장난에 일본 정부가 놀아났다. 스스로 교만한 생각에 미국, 프랑스 등 외국의 기술지원 제의를 거절했다. 관리와 기업의 유착관계가 투명성 부재로 이어져 화를 키웠다 등등.

무엇을 말하나. 대재난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동시에 인간의 위대함도 일깨우고 있다. 그동안 일본 대지진이 준 메시지라면 메시지다. 거기에 또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의 한계라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는 사실 말이다.

원전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자랑한다. 재난 대비 인프라는 세계 정상급이다. 훈련도 잘 돼 있다. 그런대도 막상 사고가 발생하면 우왕좌왕한다.

일본이 현재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아니,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거기에서 인간의 한계성이란 게 찾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게 워싱턴타임스의 분석이다.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일본이 아닌 중국을 지적한 것이다.

에너지를 확보하라. 중국이 맞은 지상과제다. 경제발전은 체제유지와 직결돼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에너지다. 그 지상명령에 따라 세계 최대 원전 보유국인 중국은 새로 또 28개의 원전을 세울 계획이다.

문제는 원전 건립 장소다. 지난 2008년 사천 성 대지진 진앙지에서 멀리 안 떨어진 곳에 최대 원전을 세우기로 한 것이 바로 그 한 예로 지진대 한 가운데 세워진 원전이 하나 둘이 아니다.

중국 식 공법도 문제다. 최소한 수 십 년 동안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때문에 이중, 삼중 안전망이 쳐져야 하는 것이 원전공사다. 적당히 해치우는 게 중국식이다. 수 십 년은 고사하고 수년이 보장될지도 의문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메이드 인 차이나’ 브랜드를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지적이다.

원전과 관련돼 특히 강조되는 것은 그 사회가 보이고 있는 것이 투명성이다.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 보유국이다. 게다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그 일본의 원전도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화를 키웠다. 투명성 결여가 가장 큰 원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시작은 지진이었다. 그러나 사태대처 과정에 크고 작은 실수가 따랐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허둥댔다. 보다 큰 실수는 정보를 은폐하거나 말을 바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신뢰를 상실했다. 그리고 화를 키운 것이다. 일본정부에 대한 경고와 함께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자국민 대피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바로 여기서 강조되는 게 ‘하물며’란 단어다. 세계 정상급 재난 대비 인프라를 자랑하는 일본, 민주주의 사회 일본도 사고가 발생하자 문제가 노정됐는데 ‘하물며’ 중국이야 하는 게 워싱턴타임스가 지적하고자 하는 포인트다.

그 ‘하물며’란 단어는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우리의 비상 라이프 라인은 믿을 만한가” “정부의 원전사고대책 너무 안이한 건 아니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해 한국 내에서도 있을 수 있는 원전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나와서 하는 말이다.

재난대처과정은 국가 실력의 바로미터다. 투명성에 바탕을 둔, 선진 한국에 걸 맞는 대비책이 세워져 있는지 그 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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