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의 교만함에 지구는 안전하지 않다.

2011-03-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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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 석(한인유권자센터 상임고문)

일본 미야기 현 게센누마의 시립보육원에선 5세 미만의 영아와 육아 60여명을 3명의 여교사들이 돌본다. 일하는 엄마들이 출근길에 맡겼다가 저녁 퇴근할 때에 데려간다. 지난 3월11일 지진해일(쓰나미)이 몰려오자 보육원의 교사들은 육아 67명을 인솔해서 인근 마을회관으로 피신을 했다. 마을회관의 2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교사들은 아이들을 이끌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에는 눈까지 내려 아이들에게 커튼을 찢어 뒤집어 씌우고 추위를 견디도록 했다. 교사들은 이틀 동안 추위와 배고픔에 칭얼대고 울어 제치는 아이들에게 틀림없이 집에 갈수 있다고 희망을 갖게 하면서 버텼다. 건물이 침수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자위대의 헬기에 전원 구조되었다. 그리고 교사 2명은 실신
하고 말았다. 일본의 참혹한 지진참상을 뉴스로 접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감동을 받은 스토리다.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상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침착하고 담담하고 냉정하다. 대지진의 참사에 NHK는 흥분하지 않고 뉴스와 피난 정보만 신속하게 전하고 있다. 다리를 다친 환자는 구조대가 도착하자 미안한 태도를 보이며 “나보다 더 급한 환자가 있는 것 아닌가?”고 물었다.

남편과 연락이 안 된다고 애끓는 구조 요청을 하는 피난소의 중년 여인은 소리치며 절규하는 대신에 고개를 숙여 훌쩍 거리기만 했다. 생필품이 부족해도 약탈이 없고, 수퍼마켓 앞에는 수백 미터의 줄이 이어졌지만 새치기가 없다. 대피소와 쇼핑센터, 주유소, 지하철역에서 그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대피소에서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는 배려가 넘친다.


일본 국민은 당장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생지옥의 처지에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한 시민의식을 보여 줘 지진에 놀랐던 세계를 다시 한 번 더 놀라게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까지 했다. 일본의 참혹한 재난을 바로 옆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 지진발생의 바로 다음날인 지난 12일 한국의 개신교가 세계 앞에 자랑(?)하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한 원로급 목사가 “일본국민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진으로 경고한 것 같다”고 했다.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우선은 어루만지고 다독여야 할 목회자가 소리 높여 외친 말이다.

한국의 어느 방송사 뉴스에선 “지진 때문에 한류 스타들의 일본 공연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며 일본에 일고 있는 한류열풍이 위축될 것”을 걱정했다. 어느 신문에선 ‘일본이 침몰한다’라는 헤드기사로 지진해일을 알리자 일본 네티즌들의 “일본이 침몰하니 기쁜가?”란 반응이 나왔다.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과 우리의 반응이 이렇게 대조적이다. 오히려 한국내 반일, 항일 단체들의 입장이 그나마 우리의 품격을 살려주고 있다.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선 19년 동안 해 오던 시위를 이번 주엔 멈추기로 했으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이 국가적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란 성명을 냈다. 원폭피해자협회와 귀국 사할린 동포들은 적은 돈이나마 쪼개어 모금을 시작했다. 일본의 대지진이 일어난 날, 오바마 대통령의 위로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다른 나라 대통령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겸허한 모습이다. “Today’s events remind us of just how fragile life can be (오늘의 재앙은 우리의 삶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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