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주 기부

2011-03-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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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가지고 있는 이름에 부모의 염원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이름이 한자음일 때는 그 한자를 알아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의 경향은 순전한 한국말로 된 이름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그 이름들이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한다. 예를 들어 기쁨, 믿음, 빛나리, 아람, 송이, 별, 방울, 차돌, 시내, 구슬...등을 부를 때는 싱그러운 느낌이 든다.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데 그 동안은 왜 머무적거렸을까.

한자로 된 이름은 중국 영향을 받았겠고, 일제시대에는 일본 영향을 받은 이름이 많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말의 이름이 나타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한 것과 더불어 우리말의 어휘 수가 늘어났음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이름뿐만 아니라 ‘도우미’ ‘새내기’등은 그럴듯한 말로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예쁜 말들이다. 오늘도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새 낱말들을 훑어보던 중 뜻있는 말을 찾았다.

바로 ‘재주 기부’이다. 이 말은 새로운 개념을 주는 말로서 뜻이 있다. 누구나의 마음에도 기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의치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주 기부’라는 말은 기부의 범위를 넓히면서, 누구에게나 길을 터주는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말은 친절 기부, 웃음 기부, 도움 기부, 알림 기부, 나눔 기부, 심
부름 기부, 대필 기부, 통역 기부... 등으로 발전할 수 있고,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이다. 앞에 나열한 것처럼 다양한 기부를 할 수 있다면 ‘기부’라는 말에 하등 주눅들 이유가 없다. 나 자신도 참가할 수 있으니까.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기부할 수 있으니까.


‘말’에는 위력이 있다. 한 마디 말 때문에 감동할 수 있고, 한 마디 말 때문에 친구를 잃을 수 있다. 말은 사람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이 도구가 많을수록 친구를 사귀거나 일을 할 때 편리하다. 세계가 한 가족이 되어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말들이 바쁘게 왕래하게 되었다. 알고 있는 말의 가짓수가 많을수록 친구 사귀기와 일하기를 쉽게 하는 도구를 갖춘 것이다.

이 지역 학생들도 몇 가지 말을 익히고 있다는 자랑을 한다. 그러나 ‘그 중에 한국어가 섞였겠지?’라는 물음에 고개를 젓는 경우를 본다. 그 이유는 한국어를 별로 활용할 기회가 적다거나, 조금은 알 수 있으니까 라고 대답한다. 일상 용어를 조금 알고 있는 정도라면 ‘알고 있다, 사용할 수 있다’의 범주에 들 수 없다. 그 이유는 일상 생활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으니까. 또 한국어의 사용 빈도가 적다는 이유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학습에는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이 있다. 필수과목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목을 말한다. 그래서 필수과목인 한국어의 사용 빈도가 적다는 것 때문에 열심히 공부 안 해도 좋다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한국어가 필수과목인 까닭은 한국어는 한국역사이고,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몇 가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까닭은 생활에 필요하다거나, 또는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즉 선택과목이다. 한국말을 안다는 것은 말하기, 읽기, 쓰기, 글짓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한국말을 정말 안다는 것은 이 말의 특색 즉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새로 만들어진 어휘들을 보면서 한국인의 창의력을 자랑한다. 창의력이란 발명품이나, 예술품이나, 생활 기구나, 건축 등 눈에 보이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언어처럼 무형의 창의력도 한국의 힘이다. 여러 모로 만발하는 한국의 잠재력이 이 지역에서 멈출 수는 없다.

‘기쁨아, 오늘은 무슨 한국 이야기를 들려줄까’ ‘믿음아, 같이 붓글씨를 써볼까’ ‘차돌아, 차돌의 뜻을 아니?’ ‘엄마는 내일부터 옆집 할머니 영어 통역을 맡았어’...이렇게 각종 친절 기부, 재주 기부가 꽃피는 날이면 틀림없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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