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 해피 데이”

2011-03-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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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준 업(자유기고가)

지난해 12월, 시내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가 딸에게 모두 넘기고 손을 놓았다. 우리 부부는 근 16년간 개업한 이래 3층을 오르내리며, 새벽시장을 돌면서 자나 깨나 일, 일, 그저 일만 해왔다. 이민 1세가 다 그러했듯이...
그 와중에서도 어느 세월엔가 여기서 물러나면 할 일들을 그때 그때 노트에 적곤 했다. 일에서 손을 떼고 난 후 부산에 계시는 연로한 장모님을 먼저 찾아뵙는 것을 시작으로 제일 먼저 한 것이 여행이었다. 미국내 유서 깊은 명소를 천천히 돌아보고 거리가 지척인 뉴욕의 오페라 공연을 정장을 하고 아내와 함께 관람하는 계획도 적었다.

다음에는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서 민박하며 토종 음식만을 먹으면서 초가을을 보내고 그후에는 대원군 시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천주교 성지를 구석구석 찾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베토벤 생가를 비롯해서 불멸의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이 살았던 마을, 박물관 등을 차근차근 찾아보는 것이다. 또 어느 하루는 스위스 몽불랑이 보이는 호텔에서 아침 커피를 마시며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감사의 시간을 가지면서 일이 아주 힘든 날에는 “여보 힘을 내야지, 몽불
랑의 아침 커피를 마셔야지” 하며 아내를 위로했던 일. 그 생각 자체만으로도 고달픈 그날 그날의 일과에 위안이 되면서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새로운 용기와 활기를 얻고 했다.


또한, 읽고 싶은 책 이름들을 꽤 많이 적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수입의 1%는 책을 사서 읽을 것)을 깊이 새기면서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그때 그때 읽는 것 말고도 두고 두고 읽을 도서들을 적어 이 책들이 꼽혀있는 나의 작은 서재(?)를 그리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날들... 창문의 커튼을 열면 잔잔한 호수가 보이는 곳에 작은 집을 장만하고 조용히 성경을 읽으면서 붉은 석양 노을을 맞이하는 꿈을 그렸다. 또 컴퓨터를 익혀서 나이가 문제되지 않는 네티즌 세계속으로 들어가 종횡무진 뛰고 싶었다. 때가 되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 음악을 다운로드 해서 CD에다 굽는 단계로 들어가 나는 ‘오 해피 데이(O Happy Day’ My Way)’ 이외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선곡하여 내가 사용할 CD에 옮기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근 일년을 차에 오르면 으레 오 해피 데이를 여러 가수의 노래로 들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나의 의식 속에는 눈만 뜨면 즉시 행복한 날들로 시작이 된다. 우리가 그렇게도 열망했던 꿈들이 설사 다 이루어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내외는 건강한 몸으로 ‘오 해피 데이’ 속에서 살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사계절을 모두 행복한 날로 채워주실 것이고 그 속에는 분명히 소망하는 꿈들도 이루어지는 날이 있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 3월의 바람 소리와 함께 들리는 오 해피 데이 노래가 오늘 따라 유난히 나의 가슴 속 깊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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