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을 욕보이는 망측한 사람들

2011-03-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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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역사교사)

1076년 겨울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로 향하는 신성로마황제 헨리4세의 마음과 육체는 고통스러웠다. 성직매매등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교회를 개혁하려는 교황 그레고리 7세와 서로 성직자 임명권을 챙기려는 다툼으로 파문을 당하자 무조건 교회에 복종하는 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교황을 직접 만나 용서를 빌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힘들게 알프스를 넘은 황제는 ‘카노사성’에 머물면서 알현을 청했으나 교황은 허락치 않았다. 석고대죄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황제는 맨발로 눈 위에 서서 울며 연 3일을 빌고 또 빌었다. 교황과 황제의 싸움은 이렇게 교황의 승리로 끝나면서 ‘교황은 신 아래에, 그리고 황
제 위에’라는 자리 매김이 확인되는 계기가 됐다.

성직자들에게는 ‘교황의 영광’이나 역사가는 이를 ‘카노사의 굴욕’이라 기록했다. 그후 교황의 권위는 더욱 막강해져 갈릴레오는 자신의 지동설을 포기한다는 서약서를 쓰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불과 400년전 일이다. 역사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켜 현대국가통치질서를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200년을 더 기다려 프랑스대혁명을 지켜봐야 했다.


서울에서의 한 특정종교행사에 참석한 민선대통령이 이목 번지르한 목사의 통성기도를 들으며 그 단상아래서 무릎을 꿇고있는 모습은 무척 망측스러워 보인다. 중세종교재판정에서 이단으로 재판 받는 피고의 모습 같아 더욱 그러하다. 한국판 ‘카노사의 굴욕’이라 적어두는 것이 좋겠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종교행사에 초청해 교회제단아래 무릎꿇게 함으로써 교회는 한나라를 제 품에 안은 듯해서 흐뭇하겠으나 이는 몰상식한 위헌행위이다.

자제할 수 없는 권력욕과 재력이 비대해지면서 신교목사들은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수용이 지나치다며 대통령을 협박하고 승려들은 자기들에 대한 정부의 보살핌이 부족하다며 사찰출입을 금하고 신부들은 자기네를 땅이 강물에 소멸될까 두려워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죽기로 방해한다. 반면 이런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종교집단의 횡포를 비판하는 학술단체나 걱정하는 정치세력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위험수위를 넘어선 그들의 위헌적 월권행위는 이성에 호소한다해서 스스로 자정되거나 수그러질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인기주의에 정치생명을 거는 무능정치인들에 의해 고무까지 받고 있다.

대통령을 협박하는 용기있는 성직자들, 그리고 국가원수를 제단아래에 무릎꿇게 하는 재주를 가진 목사들의 망동을 차단시킬 수 있는 정치인의 능력이 한계를 보일 때 국민은 군사독재자에 대한 향수심을 갖게 되고 김일성 독재자 숭배와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좌파사상이 만연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더더욱 끔찍한 이기집단의 전형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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