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미 FTA와 장하준

2011-03-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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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패러다임(Paradigm)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예 중의 하나가 지동설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인정받기 전, 유럽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따라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 그러나 기존의 천동설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자꾸 생기다보면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세상을 보는 사고의 틀을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전환이 가져오는 효과는 상당히 파격적이
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게 되면 그동안 못보던 것,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겼던 일들이 설명될 때가 많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경제학)의 책들이 그렇다.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은 치밀한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기존의 경제학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던 여러 국가들의 경제 상황과 관념들을 명쾌하게 해석해준다.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 FTA를 비준해서는 안된다’는 등 그의 주장들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기존의 맹목적으로 믿어왔던 고정 관념을 깨준다는 점에서 무척 신선하다.


한국인으로 살다보면 가끔 ‘지고선’으로 믿어온 고정관념들이 있다. ‘자유주의’라는 가치가 대체로 그렇다. 정치적으로도 그렇지만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이 가치는 거의 절대 명제로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자유무역이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이며, 국토의 3면이 바다여서 무역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또 자유무역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부문의 이익이 그 손실을 보충하고도 남으며, 심지어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에 특정 부문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식이다.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미국에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중에서도 ‘그래도 FTA는 해야 하는 것’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이에대해 장하준 교수는 한미 FTA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FTA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과 영국 등 성공한 나라들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사용해온 나라라는 것이다.“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우월한 외국의 생산자와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국제 경쟁으로부터 격리되는 기간이 있어야 한다”<나쁜 사마리아인들 중에서>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 94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참여했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반대론자들이 꼽는 대표적인 자유무역협정의 폐해사례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시장을 접경하고 있는 멕시코 입장에서는 기대가 컸을 터이지만, 현실
은 달랐다. 2001-2005년 멕시코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0.3%에 그쳤다. NAFTA 이전의 연간 소득 증가율은 3.1%였다. 장 교수는 때이른 무역자유화 도입으로 멕시코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FTA로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본보 2월18일자>에서 “한미 FTA가 발효되면 전자, 자동차 등은 조금 득을 볼 것이고 농업, 서비스는 피해를 볼 것”이라며 “기술력이 필요한 차세대 산업의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관세 낮춰서 부자된 나라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그의 이론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대적할 이론이 없던 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개인적으로 한미 FTA 체결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좋은지, 또는 나쁜지를 자신있게 판단할 식견은 없다. 다만 한미 FTA가 무조건 필요하고,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 본 뒤 우리에게 유리하면 하고, 불리하면 안했으면 좋겠다. 아니, 안해도 큰일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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