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

2011-03-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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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미 정 (뉴욕가정상담소 상담가 호돌이 방과후 프로그램 매니져)
지난 2월은 미국 의회에서 정한 제 2회 청소년 데이트 폭력 자각 및 방지의 달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매회마다 미국의 청소년 4명중 1명이 파트너로부터 신체학대뿐만 아니라, 스토킹, 감정학대와 성적학대 등 데이트학대의 경험을 보고했다고 한다.

한인사회에서도 가정폭력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것 같다. 데이트 폭력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결혼후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고,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청소년기 이성친구를 사귈 때 데이트 폭력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통 이성친구를 진지하게 사귀기 시작하는 시기가 청소년기이다. 이 시기에는 이성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자신과 상대를 더 많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여성 또는 남성으로서의 정체감을 형성하게 되고, 앞으로의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지식이나 태도 등도 배우게 된다.

반대로 청소년기의 데이트를 통해 상대 이성의 심하게 부적절한 행동이나 태도, 즉 데이트 폭력을 경험할 수도 있다. 상대 파트너가 지나치게 질투가 많아서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한다거나, 주변에 사람이 있을 때는 잘해주다가 단둘이 있을 때는 무섭게 한다거나, 무시하거나 욕을 하는 일이 자주 있다거나, 때기기 밀치기 물건던지기 등의 위협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면 이것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한다.


청소년기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도 아이가 전화가 올 때마다 난처한 표정으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거나,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전학이나 이사를 가자고 한다거나, 핑계를 되고 학교가기를 싫어하고 지각이나 조퇴가 잦아진다거나, 몸에 멍이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 설명을 제대로 못할 때 데이트 폭력을 의심해 볼 수 있다.결혼전 데이트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결혼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도 아니기 때문에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가정에서 건강한 관계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데이트 폭력이 일어났을 때 상처는 받겠지만 적절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정폭력에 노출된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을 때, 가해자의 행동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위축된다거나, 자신이 좀 더 잘하면 상대가 변하겠지 하는 기대로 관계를 계속하게 된다. 이는 가정폭력에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경험과 같다.

우리나라에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심리학적으로 적용한다면, 어린 시절에 감정적으로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행동이나 마음들이 평생을 통해 반복되면서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연구결과에서도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의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은 약물이나 알콜남용, 낮은 자아존중감을 갖는 경우가 폭력의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보다 2배가 많다고 한다. 전문가와의 상담과정을 통해 어린시절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 자동적으로 습득된 부적절한 감정이나 행동들이 나의 본 모습이 아니고 스스로가 건강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귀중한 존재임을 알게되면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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