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제역과 국제환경상

2011-03-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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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국은 물론 뉴욕에서도 상영된 2008년도 한국 독립영화 ‘워낭소리’(이충렬 감독)가 있다.경상도 산골에 사는 팔순농부 최노인과 마흔 살 된 소와의 진득한 우정을 다룬 영화로 파팍 튀는 액션과 신랄한 풍자, 화려한 영상, 굴곡 있는 스토리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78분짜리 단편영화가 대화제가 되었었다.누런 황토색 부드러운 털에 유순한 눈을 꿈벅꿈벅하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 시골아이들은 넉넉하고 따뜻한 그 등에 기대고 올라타기도 하는 친구였고, 최노인의 말처럼 ‘내한테는 소가 사람보다 나아’하던 존재였다. 그렇게 우리에게 가까이 있던 소를 비롯 발굽이 두갈래로 갈라진 동물들이 한국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작년 11월 28일 안동에서 처음 확인된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며 살처분된 소, 돼지, 닭 등은 소각할 시간이 없다 하여 생매장되는, 그야말로 대재앙이 일어났다.

동물사랑실천협회가 5개 종교단체에 제공한 ‘구제역 돼지 생매장 동영상’은 생지옥이다. 도망가는 돼지를 포클레인이 잡아서 구덩이로 밀어 넣고, 구덩이 밑에 살아 움직이는 돼지위로 쏟아지는 흙더미, 참으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이 자료에 의하면 2011년 2월 18일 현재 소 15만726마리, 돼지 318만5,116마리로 총 880여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다. 구제역 매몰지 지역 주민들은 비가 오자 흘러나온 침출수가 혹시나 지하수로 흘러들어갈 까 걱정이고 부패로 인한 악취와 참혹한 매몰지를 피해 길을 돌아가는 고통을 받고 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누구나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한국에 다녀오려 한다. 고향 친지를 만나고 조국 산천을 유람하며 민속음식도 먹고 싶어 한다. 영어가 한국어보다 익숙한 1.5세나 2세는 편하게 놀러다닐 데 많아 재미있고 물건값이 싸고 좋아 샤핑하러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흉흉한 동물들의 떼죽음이 이뤄진 한국의 지방 곳곳 어디를 안심하고 아이들을 보낼 것인가.
최근 인터넷 구글에 전국 구제역 매몰지 협업지도가 나왔다. 한국정부가 주민 반발, 개인 정보 노출 등을 이유로 4,600여곳에 이르는 전국 구제역 매몰지 위
치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네티즌들이 직접 지도 제작에 나선 것이다. 현재 리(里)단위까지 표시된 60여곳 매몰지가 나와 있어 이 지역을 피해 시골 여행을 다니자니 어느 군, 어느 길목 하나 안 걸리는 곳이 없다.

땅속에 묻혔으니 14일후면 바이러스가 죽어 안전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믿을 것인가. 더구나 침출수 방지를 위해 묻은 비닐 천막에 의한 환경오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는 친환경성 천막을 사용했으나 가축 매몰량이 급증한 1월 16일이후 비용 등의 문제로 플라스틱 재질의 천막을 사용, 이것이 분해되는데는 1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이 판국에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14일 녹색성장을 추진한 공로로 국제환경상 글로벌 리더십상을 받는다. 2일 연합뉴스에 의하면 이대통령이 자이드 환경상 사무국이 소재한 두바이에서 14일 직접 수상할 예정이라 한다.자이드상 사무국측은 ‘이대통령이 환경보호와 경제번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제기한 녹색 성장이 미래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으로서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여행으로 구제역 바이러스를 들여온 사람도, 유포시킨 사람도 아니지만 애초에 안동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마자 정부, 방역당국, 정치권 모두 심각하게 인식했어야 했다. 매일 구제역이 성큼성큼 전국으로 퍼져가는데도 정치권은 정치공방을 일삼으며 ‘자식처럼 아끼며 아침저녁 먹이며 키우던 가축이 하루아침에 죽어나가는 축산농가의 비애’를 나몰라라 했
다.어떻게 총체적인 책임자인 대통령이 국제적인 권위의 환경상을 받을 수 있는가? 굳이 이 상을 받아야겠다면 상금 50만달러를 구제역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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