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스카 상 수상자 은발의 노장

2011-03-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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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자 (의사)
금년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의 각본상은 은발의 노장인 73세의 데이빗 세이들러가 거머쥐었다. 역대 오스카 각본상 수상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영화줄거리는 공석상에서 연설의 공포증에 시달리는 말을 더듬는 영국 왕 조지 6세(1936-1952)와 국왕의 언어 교정 치료사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조지 6세 영국 국왕은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로 현대사 왕실이야기다.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세기적인 염문을 뿌리며 왕위를 버리자 동생이었던 조지 6세가 갑자기 왕위에 오른 후 정체성의 갈등과 혼란을 겪는다. 이때는 나치의 수장이었던 히틀러가 카리스마 넘치는 뛰어난 웅변술로 대중을 열광시키며 유대인 대학살과 유럽대륙을 피로 물들인 세계 2차대전 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발음이 틀릴까봐 긴장 속에서 답답하기까지 한 영국 국왕의 대국민연설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마침내 영국 국왕은 히틀러와 맞서는 전세계에 울려 퍼진 대국민 라디오 방송연설로 국민을 격려하고 연합군을 결집시키는 감동적인 연설을 해내었다. ‘킹스 스피치’의 각본을 쓴 작가의 생애의 포부는 60년 전부터 조지 6세의 역경을 극복한 생애의 작품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1970년 런던에 살고 있는 조지 6세의 치료사의 아들을 찾아내어 그의 아버지가 쓴 노트북을 입수했다. 다만 국왕의 미망인 현 엘리자베스 어머니로부터 승낙을 받아내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망인은 국왕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너무나 아픈 기억이라면서 그녀가 죽은 후에 작품을 쓰라는 거절내용의 편지를 개인비서를 통해 받았다. 그 후 2002년 엘리자베스 모친이 사망할 때까지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05년 식도암에 걸려 투병으로 작품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왜 작가는 조지 6세의 생애를 재조명하는데 그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으며 집착했을까? 말을 더듬는 왕의 삶과 작가 자신의 삶이 닮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1937년에 런던에서 모피 상인이었던 유대인 중류가정에서 태어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인종청소라는 유대인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그의 가족은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배를 타고 길고 긴 항해 끝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는 어린 나이에 겪었던 전쟁의 충격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로 세 살이 되기 전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해 16살 까지 말더듬이로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그는 뉴욕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동안 말을 더듬는 것을 감추려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지냈다고 한다. 보통사람들과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제왕이나 작가의 어린 시절의 외로움은 모두 마찬가지다. 영화장면에서 국왕이 대리석을 입 속에 가득히 채우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암송하는 발음교정 연습을 하는 혹독한 과정을 그린 것은 작가의 청소년에 겪었던 뼈를 깎는 듯한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작가는 조지 6세는 그의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다고 회상한다.

좌절과 고통 속에서 보냈던 그에게 그의 부모는 “조지 6세의 말 더듬은 너보다 훨씬 심하지 않느냐? 그러나 국왕은 대국민 방송 연설발음은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위대하고 감동적인 연설이었다” 라고 그를 격려했다. 그는 험난하고 긴 여정의 디아스포라의 삶을 황혼기에 할리웃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은발의 노장의 각본이 없었다면 ‘킹 스피치’라는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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