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실한 멘토 ‘Korean Mom’

2011-02-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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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만 옥(전 고교역사 교사)
“오늘 저녁, 미국에서 40년이상 그리고 이곳 플러싱병원에서 RN으로 30년간 함께 일했던 동료 ‘수잔’의 은퇴파티에 함께 모인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녀는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나온 후 미국의 환자를 위해 일한 능력있고 부지런한 동료였습니다. 따뜻한 신뢰감으로 동료들의 일손을 덜어주었고 의대졸업후 초년의사로써 이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경험 없던 저에겐 수잔은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오랜 현장경험이 그녀에게는 넘쳐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예로부터 흔치않다는 나이 70에 은퇴를 결심한 아내를 위한 파티에서 동료를 대표해 단상에 오른 젊은 주임의사의 인사말이다. 노경에 이루도록 병원돈을 가져간 것이 미웠던지 나이를 생략하는 유머이다. “동료들이 저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주니 놀라워요. 저는 신을 믿지 않으나 오늘은 기독교인들이 즐겨 쓰는 ‘신의 축복’이란 말을 빌려 쓰려해요. 이 말은 그들이 바로 저를 지칭해 만들어 낸 말이니까요. 한국전쟁 속에서 살아남아 서울에서 어렵사리 대학교육을 받은 후 미국땅을 밝은 저에게 미국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또 높은 지위까지 주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자비까지 베풀어 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구속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새로운 여행길을 찾아 떠나는 아내의 인사말이다. 가난했던 학창생활을 끝내고 꿈의 실현을 위해 선택한 땅이 미국이었다.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내게 미국은 많은 혜택을 베풀어 주었다. 시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격식에 어울리지 않는 신혼여행길을 떠났다. 그랜드 센트럴 정거장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 어딘가로 달리다 이름 모를 아담한 시골정거장에서 내려 핫도그를 사먹으며 찍은 빛바랜 사진의 신혼부부의 모습에는 나침반 없이 항구를 떠난 항해사의 불안감 같은 것은 엿보이지 않는다.

좋았고 나빴던 시간이 함께 지나가는 동안 아내는 내가 필요할 때 곁을 지켜준 연인이고 친구였고 자식들에겐 따뜻한 어머니요, 훌륭한 교사였다. 직장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전문직 봉사자로 동료들에게 ‘korean mom’으로 불리는 ‘멘토’였다.지난날 보이지 않게 베풀어졌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따뜻한 그녀의 손길이 가정의 행복의 원천이였음을 가정성원들은 기억하고 있다. 직장일에 보람을 갖는 아내를 종용해 은퇴케 함으로써 아내로부터 더 이상 마음 아픈 말을 듣지 않게 됐으니 아직 그녀가 병원생활에 미련을 갖는 것을 보고 내가 즐거워하는 이유는 자식들에게 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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