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쓰레기와 환경오염

2011-02-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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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석 빈(교도소 심리학자)
오래 전에 한국의 한 무명의 철학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을 하는 것은 마치 변소를 짓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변소가 없으면 아무 데나 변을 보고 다니기 때문에 변소를 따로 하나 지어서 그 한 곳에만 변을 보게 하자는 이치라고.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는 입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배설하는 배설구는 둘이다. 그리하여 입의 수는 인구의 수와 꼭 같지만 배설구의 수는 인구의 두배이다. 그리고 음식의 섭취량과 배설량은 산술전 상관비례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를 섭취하면 하나만큼 배설하고 둘을 섭취하면 둘을 배설한다. 종교에는 금식을 하는 예가 있는데 이러한 의식 뒤에는 배설량을 줄이겠다는 뜻이 들어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을 나아서 제일 먼저 용변훈련을 시켜야 한다. 아이가 기저귀를 뗄 때가 되었는데도 계속 기저귀를 채워야 한다면 부모는 그 자식의 정신상태를 의심해야 한다. 인간의 변소사용은 청결관념과 질서의식을 반영하므로 인간이 처음으로 변소를 사용한 때를 인간역사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사람의 용변행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처음으로 그러한 연구의 학문적 토대를 세운 사람은 현대심리학의 선구인 시그몬드 프로이드이다. 프로이드는
그의 용변연구를 통하여 항문형(anal type)이라는 성격형을 제시하였다. 항문형 성격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아이적의 변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연장하여 결국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가 되는 경우요, 다른 하나는 변에 대한 관심에 반동작용을 일으켜 청결망집증(obsessive compulsive)과 같은 증세를 일으키는 경우이다.

수전노는 사회에서 성공하고 득세도 하지만 청결망집증에 걸린 사람은 이 더러운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때로는 정신병자로 몰릴 수도 있다. 자연에 버려진 사람의 배설물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변질은 일정한 시간과 산소를 요한다. 자연변질되는 속도보다 사람의 배설물 만들어내는 속도가 더 빠르면 그 배설물은 우리 주위에 축적이 된다. 이러한 진로가 계속될 때 궁극에 가서 일어나는 물리적 부조리와 혼돈 상태를 엔트로피(entropy)라고 부른다. 효과적인 변처리 시설은 깨끗한 변소와 넉넉한 하수도 및 하수처리장일 것이다. 하수처리장은 배설물이 섞인 하수를 한곳에 모아 그것을 걸르고 받은 후 속의 유기물을 분리하여 모든 더러
운 것들이 자연 변질되게 도와줘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좋은 변소시설이 하는 일은 마치 종교가 하는 일과 흡사한 데가 있다고 할만하다.

마틴 루터는 자기를 자주 무르익은 변(freck)이라고 부르며 살았다고 하고, 미국의 작고한 시인 오덴(W.H.Auden)은 그의 한 시에서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변기에 앉아있는 사람’으로 고쳐 부른 적이 있었다. 우리가 부르는 ‘문명’이라는 것도 사람과 꼭같이 섭식을 하고 배설을 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쓰레기와 환경오염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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