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이다. 강한 야광 색상의 커다란 꽃과 나무들이 그려진 망사 스크린 몇 겹으로 장식된 무대가 한 겨울 낮의 우리 모두를 환상적인 ‘한 여름 밤’의 숲으로 이끌었다.
하늘하늘한 발레리나와 에너지 넘치는 남자 댄서들이 경쾌하고 산뜻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춰 무대를 휩쓴다. 고운 자태, 우아한 몸놀림, 노련한 기술들에 우린 점차 꿈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중고등학교 내내 무용반원이었던 나는 무용공연을 자주 가는데, 수년 전부터는 신시내티 발레단과 인연을 맺어 이런저런 봉사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엔 한국 유니버설 발레단 소속의 한 중국인 남자 댄서가 신시내티 발레단에 입단했다.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마침 내가 한국을 방문 중이어서 발레단의 부탁으로 그를 만났었다. 그가 신시내티에 온 후엔 중국인 모임들을 소개해주는 등 자주 만나면서 가깝게 되어 ‘수양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발레공연의 관객은 대개 여자들이다 또 적어도 1/4 은 꼬마 발레리나들로, 남자관객은 드물다. 무슨 공연이든 대개 남편과 함께 가는데, 발레공연은 예외 없이 여자친구와 가게 된다. 처음엔 남편이 이런저런 핑계를 댔으나, 이젠 내가 아예 권하지를 않는다. 함께 가는 여자친구도 같은 연유로 나를 파트너로 택한다.
대개의 남자들은 발레에 흥미가 없다. 미술, 음악 등 다른 모든 예술을 좋아하는 남자들도 발레라면 시큰둥하다. 남자 댄서들의 동작을 보는 일이 불편한 것도 이유 중 하나란다. 발레 초기엔 남자들만 발레가 허용되었다는 걸 알면 뭐라 할까?
발레라는 어휘는 프랑스에서 왔지만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궁정사회에서 시작된 것으로, 처음엔 기사가 되는 필수종목으로 남성의 독무였다고 한다. 기사의 질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종목의 하나여서 대개 개인수업을 받았다. 그러다가 점차 여성이 포함되었고 그룹으로도 추게 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 발레를 좋아했던 피렌체 출생의 한 귀족여성이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가 되면서 발레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 루이 14세에 의해서 프랑스에서 꽃피우게 되었다. 발레의 용어가 거의 프랑스 어휘인 것이 바로 이에 연유한다. 발레를 사랑했던 루이 14세는 결국 스스로 전문 발레댄서가 되었다.
19세기 초부터는 러시아에서 다시 꽃을 피워 러시아 발레가 2차 세계대전 전 서유럽으로 재소개되었다. 그후 마타로바, 누레예프, 바르시니코프 등 많은 망명 러시안 댄서들에 의해 서유럽과 북남미의 발레가 재정립되었다 한다. 그러니까 발레 역사의 주역은 남자인 것이다.
발레는 꾸준히 변화되고 있다. 세계가 좁아지면서 형식만이 아니라 구성원에도 변화가 있어 특히 미국에선 흑인과 아시안이 늘고 있다. 인식도 바뀌고 있다. 시각적인 예술인만큼 몸매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에서 아주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키가 작고 다리가 굵어도 기술이 뛰어나면 수석댄서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번 신시내티 발레공연에서도 수십 명의 늘씬한 댄서들 한 가운데서 기립박수를 받았던 남녀 수석댄서는 남자 중 가장 작고, 여자 중 가장 작은 댄서였다.
기사정신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발레를 보라는 나의 억지(농담)에도 막무가내였던 남편은, 드디어 ‘수양아들’의 댄스를 한 번은 봐야겠지, 하며 다음번엔 같이 가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김보경
대학 강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