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술은 영혼으로 답하라”

2011-02-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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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춘 기(자유기고가)
1990년 6월16일 영국 런던 소더비 고미술 경매장에서는 세기적 기록을 수립하는 경매가격으로 한 점의 그림을 낙찰시켰다. -낙찰품목: 가제트의 초상화(68x57cm 캔버스에 유채 1890년작) -저작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네덜란드) -낙찰가격: 8250만 달러 -낙찰자: 일본인 료에이 사이토(다이쇼와 제지공업사 회장) 그림이 낙찰되는 순간 경매장은 숨넘어갈만큼 질식 상태
로 빠져들었다. 죽은 저자를 묘지에서 뛰쳐나오게 하기에 충분한 낙찰가이기 때문이다.

이 날로부터 100년전인 1890년 화가 반 고흐는 평생에 876점의 그림과 동생 ‘데오’에 보낸 667통의 편지를 남기고 허기진 창자를 움켜쥐고 다락방에서 권총자살 했다. 그가 동생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가운데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굶주림을 역으로 씹고 미칠 것 같은 고독 속에서도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온 화가 ‘고흐’. 저승에 가서 바칠 영혼까지 저버리고 37년이라는 평생을 혼자 살다 홀로 죽어간 그는 천재인가 바보인가! 의사이자 친구로 고흐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켜보았던 폴 페르낭 가제트 박사가 소장하고 있었던 최고수준의 고흐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가제트의 초상화’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가제트의 초상화를 8250만 달러에 사들인 다이쇼와 제지공업사 회장 사이토는 단 한번 이 그림을 보고 창고에 보관하였다. 그는 일본정부에 240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고 가까운 친구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후손들이 상속세를 부담하지 않도록 고흐작 ‘가제트의 초상화’를 자신과 함께 화장하라.”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후 사이토 회장은 79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후로 반 고흐의 영혼이 담긴 ‘가제트의 초상화’를 본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이토 회장은 죽은 후 화장하지 않았다. 항간의 소문은 사이토 회장이 자신의 신과 같이 이 초상화도 매장시켰을 거라는 설과 극비리에 친지에 팔았다는 후문이 있으나 어느 것 하나 확인 된 바 없다. 이렇게 해서 빈센트 반 고흐는 두 번 죽었다. 배고파 굶어죽고, 돈에 파묻혀 죽고!원죄는 인간에게 있다. ‘신’에서부터 ‘사탄’에 이르기까지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달러’로 평가하려는 발상은 가히 창세기적 걸작이다. 반 고흐는 화폐로 평가받기를 거부했다. 그는 캔버스를 살 돈이 없으면 침대시트 뒤에 영혼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자신을 먹여 살린 동생 데오에게 영혼을 주어 빚을 갚았다.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 고흐의 작품에 생긴 단 1밀리미터의 흠이라도 이 손으로 복원할 기회가 쥐어진다면 그 작품 앞에 내 영혼을 바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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