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공하는 혁명

2011-02-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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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은 아주 오랫동안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꽃펴왔다. 가장 오랫동안 인간이 농사를 지으며 모여 산 흔적이 남아 있다는 여리고도 지중해 연안이고 가장 오래된 문명인 이집트, 서양의 정신적 뿌리인 예루살렘과 아테네 모두 지중해 근처에 있다. 근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서양 문명의 종주국 노릇을 한 로마는 지중해를 호수로 한 나라였고 서로마가 망한 후에도 1,000년을 더 버틴 동로마 제국도 지중해 연안 국가였다.

지중해와 멀리 떨어져 있던 유럽의 변방 영국이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의 패권 국가로 등장한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수 천 년 동안 변두리 국가였던 영국은 어떻게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영국이 제일 먼저 산업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났을까. 그전까지 생산의 주동력이던 인간과 가축의 근육을 대신할 수 있는 증기기관이란 새 동력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증기기관은 왜 영국에서 발명됐을까.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다. 왕의 말이 곧 법이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아무리 왕이라도 의회가 정한 법을 어길 수 없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세금을 매겨 호의호식 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누구도 자기 소유나 자기가 만든 발명품을 이용해 번 돈을 뺏기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기술 혁신은 법치주의가 확립된 곳에서만 가능하다. 기껏 좋은 기계를 만들어 생산성을 높여봤자 권력자가 엄포를 놓아 가져가 버리는 곳에서는 물건을 잘 만들 의욕도 열심히 일할 생각도 나올 수 없다. 영국에서는 어떻게 법치주의가 왕권을 누르게 됐을까.


사가들은 그 결정적 계기를 1688년의 ‘명예혁명’에서 찾는다. 가톨릭 성향이 짙었던 제임스 2세가 아들을 낳자 영국이 완전히 가톨릭 세상으로 바뀔 것을 우려한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왕의 사위이자 네덜란드 대공인 윌리엄을 모셔 왕으로 삼는다. 제임스 2세는 군대마저 자기한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는 코피를 잔뜩 쏟은 후 프랑스로 도주하고 만다.

윌리엄을 비롯한 혁명군은 제임스를 잡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상 도주를 종용하고 놓아준다. 40년 전 찰스 1세를 처형한 대가가 얼마나 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예혁명’은 피를 흘린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혈혁명’이라고 불린다.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왕의 권한은 약화되고 의회의 발언권은 커져 ‘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 ‘명예혁명’은 성공한 혁명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성공하는 혁명은 집권자와 혁명군 사이 타협의 산물이다. 제임스는 남은 군대를 모아 최후의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었지만 권좌를 내주는 길을 택했고 혁명군은 제임스의 목을 칠 수도 있었지만 놔주는 길을 택했다. 서로 최대한 피를 보지 않으려 애썼고 그 결과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도 없었다.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도 그랬다. 한국의 군부는 다시 한 번 광주와 같은 탄압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목숨을 보전했다. 그 후 노태우 당선으로 ‘미완의 혁명’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그 미완을 완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 한국 민주주의는 발전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도 비슷했다. 동유럽의 공산 독재자들은 군대 동원을 그만두고 물러났고 시민 혁명으로 집권한 지도자들은 전직 독재자들의 목을 치지 않았다.

20일 가까이 계속된 성난 국민들의 시위에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는 결국 무릎을 꿇고 물러났다. 이번 사태는 아직까지 이집트의 실세인 군부가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국민들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가진 후 점진적인 권력 이양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성공하는 혁명의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정의의 사도들이 들고 일어나 불의의 무리를 모조리 타도하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보기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불행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프랑스와 러시아는 보여준 바 있다. 성공하는 혁명은 점진적인 혁명, 포용하는 혁명이다. 이집트가 한국 민주화 모델을 따라가길 기원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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