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이 책과 e-북

2011-02-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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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병 렬 (교육가)
“너는 뭘 먹고 그렇게 보기 좋게 자랐니?” 하고 묻자 “내 몸통은 음식을 먹고 자랐고요, 내 머리는 책을 먹고 자랐지요” 겨우 여섯 살 된 어린이의 대답이었다니 놀랍다. 195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당시 미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귀국 보고회가 자주 열렸다. 앞의 이야기도 거기서 들은 이야기다. 교육을 어떻게 하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그 때부터 필자는 미국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머리가 책을 먹고 자란다는 어린이의 표현은 간단 명료하게 독서의 필요성 그 정곡을 찔렀다. 그렇다면 머리가 자란다는 뜻은 무엇인가. 생각을 잘 하게 된다. 즉 사고력이 성장한다는 뜻이다. 귀중한 보배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에서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였다. 사람의 특징이 생각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라면 성장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러면 생각의 내용은 무엇일까. 생활 전부이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문제를 어떻게 풀고, 마무리 작업은 어떻게 하고... 등 끝없이 생각할 일이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 생활 내용 자체이다.

식물이 크려면 흙, 물, 햇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영양소는 무엇인가. 우리는 키운다는 의식 없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다른 사람과 만나고,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있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바로 책 속에서 길을 찾게 된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니까 어린이들이 글줄과 글줄 사이를 가리키느냐고 물어서 그럴 듯하게 생각했다. 과연 길이란 무엇인가.


요즈음의 디지털세계는 e-북 즉 전자 책을 내놓았다. 이것이 주된 원인이 아니겠지만 미국의 큰 도서 연쇄점이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람들은 망설이게 된다. 어느 책을 택할까 하고. 이런 현상은 결코 부담을 주지 않는다. 책을 구하는 선택 방법이 다양하게 되었음을 즐기면 된다. 역사의 전환기에 생활하는 방법은 양쪽을 즐기는 것이다. 독서는 책의 내용을 즐기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이지, 책의 모양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이 책이나 e-북이나 그 내용이 우리를 돕는다. 각 개인이 소유하는 생각의 힘은 재산 1호라고 한다. 21세기를 변화시키는 것도 생각하는 힘이라고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스티브 잡스 같은 독창적인 사고력을 갖추게 하고 싶은 염원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읽기 바란다.

어떻게 그 힘을 길러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교육방법의 연구이다. 여기에는 갖추어야 하는 환경이 있다. 가정이나 학교는 여기 저기에 다양한 책을 갖춰서 손쉽게 책의 친구가 되도록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 주위에 책을 사랑하는 인적 환경을 조성하면 더욱 이상적이다. 독서하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고 가족의 일상 생활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어라’ 천 마디보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 열 권을 제공하는 것보다, 어른들이 각자 읽을 책을 열심히 찾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도 제각기 책을 찾게 된다.

자녀들이 열심히 책을 읽을 때는 잔심부름을 부탁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부모이다. 자녀들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을 묻고, 서로 느낌을 말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과제를 주면 좋은 격려가 된다. 독서 내용의 정리 방법이다. 미국 아동문학작가 린다 수 박은 ‘뉴베리상’ 수상 작가이다. 그녀는 생후 일주일만에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야기 듣기, 읽기, 생각하기, 글짓기는 일련의 성장 과정이다. 독서 잘 하는 자녀를 키우는 일은 어렵고도 쉬운 일이다. 결코 독서 잘하는 자녀를 키우려고 하지 말자. 내 자신이 독서하는 가족의 리더가 되려고 노력하자. 이것이 바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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