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설날 추억

2011-02-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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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경(목사)
한국 고유의 음력설이 내일이다. 일제시대, 열 살 안팎의 나이에 맞이했던 그 설날은 어찌 그리 기다려지고 즐거웠는지 알 수 없다. 한달 전부터 손을 꼽아 기다려지던 설날이 지금은 날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간다. 한국에서는 고향을 찾는 귀성객차량의 행렬이 길을 메울 것이다. 겨울 김장을 담그느라 등불을 켜놓고 깍두기를 써는 어머니와 누나 옆에 앉아서 설날에 먹을 음식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굶주리던 시대에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행복했었다. 설날이 되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제일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배를 하고 그리고 부터는 곧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부잣집부터 세배를 하였다. 병풍을 둘러놓고 아랫목에 발을 개고 앉아있는 어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절을 하면, 어른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밤, 대추, 곶감, 배 때로는 돈을 주기도 하였다. 어린 세배꾼들은 세배를 하면서 동네를 한바퀴 다 돌고 마을회관에 모여 누가 많이 받았고, 무엇을 받았는지를 비교하곤 하였다. 조금 받았다거나 못 받았다 싶으면 그 집을 다시 찾아가 세배를 두 번 하다가 들키기도 하였다.

무릎을 꿇고 손을 땅에 대고 머리를 숙인 자세는 곧 낮아진 자세요, 고상하게 표현하면 겸손인 것이다. 이 겸손의 자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귀한 건과를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진심으로 어른에 대한 문안과 존경의 마음으로 하는 경우다. 히브리어에서 ‘바라크(barak)’라고 하는 단어는 ‘무릎을 꿇는다’는 뜻이고 ‘부라카(buraka)’는 축복이란 의미의 단어이다. 어원이 같은 이 단어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복을 받는다는 포괄적인 뜻이 된다. 하나님 앞에 기복적인 마음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때, 영육간의 축복을 가져오고, 인간끼리의 참된 겸손은 세상살이에 유익을 가져온다.

이제 애절한 향수를 달래가며 타향살이에 세월을 보내오던 자손들이 그들을 낳고 기르며 가르치느라고 손발이 닳고 이마에 주름 잡힌, 아직은 그곳에 있는 부모와 가친들을 찾아가는 귀성객들의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연상하게 된다. 나는 이 늦은 나이에 머나먼 이국의 한 모퉁이에서 얼마 남지 아니한 나그네길을 가면서 돌이킬 수 없는 그 설날의 향수에 젖어든다. 십자가게 달려 온갖 조난과 고초를 당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생명주신, 나의 생명의 본향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망향가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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