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부모들의 혼사 딜레마

2011-02-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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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내가 아는 집안의 아들은 1년 이상 부모와 거리를 두고 묵비권 행사를 하고 있다. 타민족 여성과의 혼사문제 때문이다. 이 집의 부모는 아들이 푸른 눈을 가진 미국인 여성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려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아들과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왜 같은 핏줄을 마다하고 구태여 다른 혈통의 여자를 집안에 데려오려 하느냐는 것이다. 이 집의 부모는 지난 70년대 초 한국에서 미국에 유학 온 사람들이다. 그후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이 당시 갖고 있던 사고가 지금까지 하나도 안 변한 게 사실이다. 그 당시 한국은 ‘결혼’ 하면 마땅히 같은 핏줄인 한국인끼리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경제적인 성장으로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패턴도 확연히 달라졌지만 특히 결혼관은 우리가 놀랄 정도로 변모했다. 예전에 한국에서 어쩌다 주위에서 외국인이 한국여성과 함께 거리를 다니는 것만 보아도 돌아서서 다시 한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런 광경이 그 당시 한국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일민족’ ‘단일문화’ 하고 부르짖던 한국에서 ‘다인종문화’ ‘다문화, 복합문화’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이에 관한 법규나 제도가 새로이 등장할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화됐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문명의 발달과 디지털 시대 첨단기술의 발전은 교통수단의 발달을 가져와 지구촌의 실질적인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아무리 먼 곳이라도 상호간의 교류와 통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정보매체의 발달은 통신혁명을 가져와 전 세계를 인터넷이라는 단일망으로 엮어내면서 지구촌은 이제 경제든, 문화든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곧바로 연결되다 보니 생활패턴이나 사고도 모두 하나로 통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이런 흐름
은 내 민족만 고집하던 한국의 결혼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 지금 한국인들의 타인종과의 결혼추세는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사는 우리도 놀랄 만큼 대세
다. 베트남, 중국, 파키스탄, 캄보디아 등은 물론, 미국태생 배우자들과의 퓨전커플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지난 2005년 한해 한국의 국제결혼 건수는 43121건으로 전체결혼의 13.6%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결혼커플 8쌍 중 1건에 해당하는 비율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자립, 꿈과 희망, 도전을 향해 쉬지않고 찾아드는 타인종들의 행렬을 볼 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율을 보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지구촌시대의 결혼문화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내 집안이 직접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이곳 한인가정 중에는 타인종을 며느리나 사위로 받아들인 가정이 많이 있다. 한국식당이나, 식품점, 혹은 마켓을 가보아도 타인종을 배우자로 만나 커플이 되어 함께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광경은 이제 하나도 별난 모습이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회풍조이고 시대적인 흐름이다.주류문화 동화가 속도를 내면서 한국어, 한국문화와는 동떨어진 한인 2세들의 경우, 자신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인식하며 타민족과의 활발한 상호교제로 배우자에 대한 사랑만 있다면 혼합 결혼에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으로 타인종과의 결혼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퀸즈칼리지 사회학과의 통계결과 아시안 여성 1000명당 188명이 백인과, 흑인 14명, 히스패닉계 백인 10명이 타인종과 결혼(23%)한 것으로 나타났다. 1세 부모들 중에는 주류사회의 높은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인종과의 혼합 결혼을 적극 권장하고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1세들 사이에는 타인종과의 결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안의 혈통을 그대로 유지해나가야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부모의 생각이 어떻든 아시안들의 타인종과의 결혼추세는 갈수록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내 자녀가 만약 타인종을 배우자로 데려왔을 때 과연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막을 것인가? 타인종과의 결혼은 여전히 대세와는 상관없이 자식을 가진 한인부모들의 딜레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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