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용아비

2011-01-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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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석 빈(교도소 심리학자)
김희보 편저 ‘한국의 옛시’에 보면 처용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서울 밝은 달에 날새도록 노니다가/ 집에 들어 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아아, 둘은 내 것이거니와 둘은 누구의 것인고. 이런 때에 처용아비 곧 보시면, 열병이야 횟갓이로다. 천금을 줄까 처용아비야 칠보를 줄까 처용아비야/ 천금 칠보도 말고 열병신을 날잡아 주소서. 산이여 들이여 천리밖에 처용아비를 비켜가고자! 아아, 열병 대신의 발원이로소이다...”

처용무가의 기원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랑 설화에 기인한다고 되어있다. 신라 49대 헌강왕의 선심을 매우 흡족하게 여긴 동해의 용왕은 그의 친아들 하나를 왕에게 주었다. 처용랑이라 이름한 이 용왕의 아들은 세상에 나와서 임금의 정사를 보좌하며 높은 벼슬과 아름다운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한번은 역신이 처용의 미모의 아내를 탐내어 사람으로 변하여 그의 방을 침범하였다. 태평성세월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다가 자리 보러 들어온 처용은 이 광경을 보고 즉흥시를 지어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처용의 이 같은 뜻밖의 동작에 역신은 탄복하여 앞으로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처용의 그림을 집 문 앞에 붙여놓고 역신을 쫓는 관습을 지켰다고 한다.

한민족의 종교와 신화와 전설은 그 민족의 고유한 정신적 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우리 조국은 벌써 언제부터 역신이 들어와서 우리의 모국을 유린하고 있다. 국토는 두동강이가 나고 정부와 정부는 폭력대결을 할 만반의 태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의 조국을 유린하고 있는 역신의 가랭이는 둘 뿐만이 아닌 것도 같다. 처용설화와 처용가의 뜻 속에는 폭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민족, 그리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우리 조상의 슬기로운 정신이 깃들어 있다. 고려조와 조선조의 전 역대를 통해 본격적인 무가로 등장하는 처용가의 변주곡을 아래와 같이
독자와 함께 읊어봤으면 좋겠다.

“아아 아비 모양이여 처용아비 모양이여! 머리 가득 꽃을 꽂아 기울어진 머리에, 아아 수명 길고 멀어 넓은 이마에, 산삼 비슷 긴 눈썹에 애인 서로 보아 온전한 눈에, 바람 가득찬 뜰에 우그러진 귀에, 오향 맡으셔 우묵한 코에, 아아 천금 먹어서 넓은 입에, 백옥 유리같이 흰 이빨에, 사람들이 칭찬하고 복이 왕성하여 내밀은 턱에, 칠보에 겨워서 숙어진 어깨에, 길경에 겨워서
늘어선 소맷길에, 슬기 모이어 유덕하신 가슴에 복과 지가 다 넉넉하여 불룩한 배에, 색띠 매시고 꾸부정한 허리에, 동락대평하여 긴 정강이에, 아아 계면조에 맞춰 춤추며 돌아 넓은 발에, 누가 지어 세웠느뇨 누가 지어 세웠느뇨/ 바늘도 실도 없이 바늘도 실도 없이. 처용아비를 누가 지어 세웠느뇨, 많고 많은 거룩한 사람이여! 열두 나라 모이어서 지어 세운, 아아 처용아비를, 많고 많은 거룩한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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