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스도교의 진리

2011-01-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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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목사/NJ크리스찬문학교실)
지난 22일자 오피니언란에 게재된 조성내씨의 ‘불교와 하나님을 읽고 나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각 종교마다 그들 특유의 우주관·생명관이 따로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천지와 만물과 생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 곧 만유안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는 분이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나 인생살이 가운데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으되 그래도 이 모양새로 세상이 존속하는 것은 그 분의 손이, 이 모두를 붙잡고 있기 때문임을 믿는다는 뜻이다. 이 분의 말씀(로고스)으로 천지는 창조되었으며 우리의 생명 또한 이 분으로부터 왔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되었음을 믿는 것이요, 이 분의 피로 나를 씻어 부활에 동참함을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연합이요 개체(유한)다. 영원자와의 합일됨으로 말미암은 자아완성을 믿는다. 결코 개별자의 실체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 기독교는 따라서 수행 정진함으로 고통에서 해탈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는다. 윤회(억겁으로 도는)사상 역시 우리는 믿지 아니한다. (억겁이란 시간은 어디에서 보장되는 시간일까. 그것은 무책임한 시간관이 아닐까.)
우리는 오직 생명이요 길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충만과, 영원 속에서의 자기완성을 소망한다. 이렇게 된 것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이며 여상이며 영원하다. 천지가 있고 없고,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의 시작이며 끝이다. 요컨대 무릇 생명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자로부터 와서 생명의 원천자로 돌아가는 것임을 깨우칠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그 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에게 다가오신 그 분의 은총을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결단코 인간의 수행정진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인연이니 연기법이니 하는 것 역시 기독적 발상이 되지 아니한다.

인간사 모든 일은 그 분의 말씀과 이에 대한 인간의 태도여하에 따를 것이요, 그 분의 오래 참으시는 뜻과 허용으로 말미암음이다. 혹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 세상이 이 모양으로 추악해지는가. 대답은 간단
하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있기 때문이다. 알파와 오메가인 생명의 원천자께로 돌아오는 일 밖에 인류가 살아남는 일은 없을 터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이 여러분의 가정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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