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교와 하나님

2011-01-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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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내 (법사/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극히 소수지만 어떤 기독교신자들은 절에서 염불하고 있는 스님한테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고, 서울 봉은사 대웅전에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배를 보기도 했다. 심지어는 절에 불을 지르고, 절 안에 모셔있는 불상을 훼손하기도 했다. 성경 ‘신명기(5장 및 13장)’에 보면 하나님은 “다른 ‘신’을 믿자고 말하는 사람을 앞장서서 죽이라”고 했다. 부처는 인간이지 신은 아니
다. 그러니까 만약 기독교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다른 신’을 믿고 있지 않는 불교인들을 미워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부처는 “나를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거꾸로, “나를 믿지 말고, 나의 가르침(불법)을 따라서 수행을 닦아나간다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이다. 모든 것은 다 인연 따라 변해가는 것이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이다.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이라는 사람도, 당신이 태아였었을 때의 당신하고, 어렸을 때의 당신하고 그리고 지금의 당신은 다 다른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나’라고 변치 않는 실체가 없으니까 ‘무아’(無我)라고 했다. 비록 당신의 태아하고 지금의 당신하고는 다르지만, 그래도 태아가 인연 따라 변해서 지금의 당신이 된 것처럼 불교는 영속성을 믿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죽어 천당에 간다면 지금 현재 당
신하고 천당에 있는 당신은 다른 당신인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연기해 가기에, 불교에서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했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다. 하나님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어느 땐가는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아있다는 신의 존재를 불교인은 결코 믿지 않는다. 불교에도 극락이나 지옥이 있다. 극락에 간다고 해도 자기가 지어놓은 업의 공덕이 다하면 극락에서 나오게끔 돼 있는 것이고, 지옥에 간다고 해도 자기가 지은 죄 값을 다 치르고 나면 지옥에서 빠져나오게끔 돼 있는 것이다. 인연 따라 항상 변해가는 것이 불교의 사상이다. ‘나’라고 하는 변치 않는 실체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나’라고 하는 변치 않는, 영구히 항상(恒常)하는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고 있다. ‘나’가 없는데 있다고 믿고 있는 것, 부처는 이것을 치(痴; 어리석음)라고 불렀다.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는데도 ‘나’라고 하는 실체가 있는 것처럼 믿고 있기에 ‘나’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게 바로 탐(貪; 욕심)이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진(瞋:화, 성냄)한다. 화를 낸다는 말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거짓말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기도 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한다. 탐진치를 3독이라고 부른다. ‘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탐진치를 없애는 방법은 나에 대한 집착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나’에 대한 집착마저 버려야 하는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나님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탐진치를 더 악화시켜줄 뿐이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은 것이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헌데 불교인더러 하나님한테 집착하라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게 불교
의 가르침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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