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틴 루터 킹목사와 인권

2011-01-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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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은 킹목사의 82회 생일이었다.

롱아일랜드지역 흑인교회 목사들은 지난 16일 주일저녁 연합으로 26회째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7일에는 메리옷호텔에서 표창식과 장학금수여식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념했다. 본인은 작년부터 이 예배에 참석하여 5분간의 연설을 하였다.


매년 이 자리에는 낫소카운티장, 검사장, 지역시장, 각국 마이노리티 대표들이 참석하여, 킹목사의 높은 뜻을 기념하고 있다. 5분간의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킹목사의 지난 생애를 찾아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1929년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전자전이
란 말이 있듯이,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유럽여행시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기회를 가졌다. 개혁자 마틴 루터에 크게 감동받고 귀국후 아들의 이름을 마틴 루터를 닮으라는 뜻으로 마틴 루터로 개명해 주었다.

아버지가 개혁의 정신을 어릴 때부터 심어준 것이다. 킹목사는 명석하여 두번이나 월반했고, 25세에 알라바마주의 한 침례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보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학문에도 뛰어난 학자였다.

그의 설교와 연설문을 분석해보면 그는 뛰어난 문장력과 어휘력을 가진 특별한 문필가였으며, 그 당시 만연한 사회악과 구조악을 과감히 철폐하기 위해 노력
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한 실천 신학자였다.

오늘날 말만 하는 목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흑인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된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버스 타지 않는 운동을 11개월동안 비폭력으로 전개했으며, 마침내 연방법원으로부터 인종분리법이 위헌이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 당시 미국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주의, 인권무시행위를 과감히 개혁하며,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았던 성경의 실천자였다.

그가 주장하며 자주 쓰던 단어는 자유, 정의, 사랑과 비폭력 혁명, 개혁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과감히 사회악을 척결함이 의무라고 가르쳤다. 그는 설교에서 참으로 인류에게 유익한 정의의 교훈을 많이 남겼다.


24만명이 모인 워싱턴 대행진에서 한 연설은 링컨대통령의 게티스버그의 연설,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과 함께 미국 역사에 3대연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워싱턴 대행진에서의 연설은 문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예언적 메세지를 담고 있어 지금 이 시대 사람들도 애용하고 있다.

그후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된 것이다.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판단하는 시대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그의 꿈, 연설은 현실화 되었다.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 노벨평화상을 최연소 나이 35세에 받았고, 1986년에 미연방의회가 그의 생일을 국가 경축일로 선포했다.

그는 짧은 39년간 이 땅에 살았지만 그의 설교와 영향력은 온 세계를 뒤덮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자유, 정의, 행복하게 사는 길을 법으로 주었다.

그 법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사람은 많은데, 자신도 실천하며, 남도 실천하게 하여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실천적인 목사나 박사가 적은 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이다.

60년을 내려오는 북한의 인권문제, 질이 점점 나빠져가는 한국교계의
문제, 사회저변에 만연하고 있는 구조악을 척결할 인물은 정말 없을까? 성경의 실천자나 우리 사회의 구조악을 척결할 진정한 혁명가는 없는 것인가? 이것이 고민이다.

손 영 구(미주탈북난민보호협의회 회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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