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의 단감을 수확했다. 감나무 잎이 감빛으로 물들어 가면 구역예배를 우리 집에서 하기로 하였다. 예배보다 감을 따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여러 명이 따니 순식간에 땄다. 두 그루의 감나무이나 작은 나무에선 두 개의 감만 열렸을 뿐이어서 큰 나무에서 수확한 감이 두 바구니 가득하였다. 올해는 열매는 실한데 예년보단 덜 달렸다.
미리 따서 말려두었던 대추도 한 바구니 있어서 감과 대추를 가족별로 싸주니, 친정집에 다녀가는 것 같다느니 시댁이라느니 하며 웃음꽃이 피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나누어주는 기분이 즐겁기만 하다.
손님들이 간 후 남편이 우리도 감을 먹어보자고 한다. “다 싸주었는데?” 하자 “하나도 안 남기고?” 이런다. 나무에 달려 있는 게 있을 줄 알고 다 싸주었다고 하니 웃는다. 정작 우리 몫은 챙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작은 나무에 달린 두 개는 먹어 보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많이 가져서 넘쳐서가 아니라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내게 나누어주는 이들이 너무 많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죽을 쑤어다 주는 후배가 있고, 수시로 밑반찬을 만들어 주는 선생님도 계시고, 기척도 없이 현관 앞에 식혜 단지를 두고 가는 시인도 있다. 김치와 오이지를 무한정 공급해 주는 구역식구도 있다. 음식뿐 아니라 시시때때로 옷도 가방도 안경도 스카프도 생긴다. 신기한 것은 주는 이들이 돈 많은 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다.
중앙도서관의 시니어 사서인 동창이 전화를 했다. 도서관의 특별 프로그램의 이름을 짓는데 문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부금 10만달러로 재정교육을 시작한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도록 근사하게 작명해 보라는 것이다. 가끔 신문에 나는 내 글을 읽은 후 “사생활을 시시콜콜 쓰는 것도 문학이냐?”
이런 소리를 서슴없이 하던 친구여서 의외였다. 요즘이 불경기인 데다가 소비문화에 물든 청소년들에게 바른 돈 쓰기에 대해 알리는 것이 취지라고 한다. 영어로는 ‘Language of Money’라고 이름 붙였단다.
까칠한 친구의 모처럼의 부탁이니 더 성의껏 생각을 해보았다. ‘돈, 알아보자’ ‘돈이란 무엇일까?’ ‘돈, 그것이 알고 싶다’ ‘돈 쓰기와 관리하기’ ‘돈, 가깝고도 먼’ 등등으로 지어보았으나 흡족하지 않았다. 우선 ‘돈’이라는 것이 별로 고상하지 않은 단어인지 작문을 하려니 점점 품위가 없어지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돈, 남의 돈에 원 없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수십 개의 이름을 지어 보냈는데 결국은 영어로 된 것을 직역한 ‘돈의 언어’라고 낙착을 보았다나? 역시 ‘돈과 문학’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가 싶다.
올해는 불황의 여파로 비즈니스를 닫은 친구도 있고 살던 집을 은행에 넘긴 지인도 있다. 건강도 재물도 직업도 잃은 이들이 많다. 폭풍이 나를 피해 갔다고 홀로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가진 게 있으니 잃을 게 있고,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고통도 있는 법이라고 하나마나한 위로를 하는 입술도 부끄럽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이다. 이제야 그 의미가 와 닿는다.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기도로 채우라는 말이 아닐까? 그의 ‘감사’라는 시에선 “감사는 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에도 한다”고 했다. 잎이 떨어진 나무가 주는 공허함보단, 성긴 가지 사이로 푸른 가을 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음을 감사해야겠다. 시간이 가면 계절이 바뀌면 세월이 흐르면 나목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감은 또 열리게 되어 있다. 감을 다 주어버렸다고 섭섭해 할 일이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자. Happy Thanks Giving! 어느덧 감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