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장례식

2010-11-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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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낮 12시, 이곳 싸우스 베이 그린힐스 공원묘지에서 거행되었던 그 장례식은 다른 장례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 전날 다우니 장례식장에서 이미 입관예배를 치루었고, 이날 안장지에서는 간단하게 하관식만 치루게 되었다. 유족들과 고인을 평소부터 알고 지냈던 조문객들이 모인 가운데 하관식을 거행하는데, 모두가 그리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슬퍼하기보다는 유족이나 조문객들 모두가 고인의 살아온 생애를 치하하며, 그분의 마지막 길을 담담하면서도 의연하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특히 그러한 분위기는 하관식이 끝난 후, 인근의 트럼프 골프장에서 유족들과 조문객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호상이었다,,,,. 그분은 일제시대인 1929년 9월 30일 한국에서 출생하여 젊은시절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사관후보생 3기로 군에 입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1년 포병소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최전선에서 작전중인 해병대 제1연대 포병대대 소대장으로 배치되어 가리산 전투, 영월지구 전투, 춘천, 화천 지구전투, 도솔산 작전을 비롯하여 문산, 장양지구 전투 등, 해병대가 참전하였던 중요한 작전에 모두 참여하였으며 그 당시 세운 전공으로 충무 무공훈장을 받았다.

휴전후에는 4차에 걸친 도미유학을 통하여 미 육군 포병학교, 미 육군 화생방전 학교, 미 해병대 상륙전 학교 그리고 미 해병대 제 1사단 포병연대에서 OJT를 수료하였으며 그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여 해병대 사령관 과 대통령 개인 표창을 수여받았다.

그 후, 해병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그 당시 최첨단 포병전술을 전수하였으며, 그 외에도 해병대 사령부 작전국 작전과장, 감찰실장 그리고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에서 근무하는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군인정신이 투철한 모범 장교로 정평를 받았다. 1956년에 현재의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세아들을 가졌으며, 1964년 예비역 대령으로 군에서 제대한 후, 그분은 1968년 수중에 단돈 100불만 간직한 채 홀홀단신 캐나다로 건너왔다.

그러나 캐나다의 기후가 추우며 경기가 좋지 않고 또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미국의 교육제도에 매료되어 얼마 후, 그분은 미국 토렌스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그분의 타고난 사업가적 기질과 근면성실은 그분으로 하여금 미국의 항공 정밀 부품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기에 충분하였으며, 많은 미국의 유수회사로 부터 추천과 감사장을 받았다.

성공적인 사업의 운영과 함께 슬하의 세 아들들도 모두 훌륭한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어 장남과 차남은 의사가 되었으며, 삼남은 본인도 타고난 아버지의 사업기질을 이어받아 현재 아버지의 유업을 훌륭하게 잘 운영하고 있다,,,.

탁 트인 바다와 함께 멀리 카탈리나 섬이 한가롭게 떠있는 풍광좋은 도날드 트럼프 골프장의 식당에서 함께 모인 유족과 조문객들은 국가와 가족을 위한 끝없는 열정과 근면 성실의 노력으로 한평생을 살아 오신 고인의 생전의 업적과 경력, 그리고 덕담을 나누면서 때로는 눈물을 짓기도 하고,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웃으면서 장례식이 아닌 마치 무슨 결혼 피로연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러자 옆의 백발의 나이드신 조문객 한분이 문득 혼자말로 한마디 하였다. “오늘은 김 재선 대령의 장례식이 아니고 팔순 잔치날야! 그 친구가 지금 하늘 나라에서도 우리보고 “후회없이 멋진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애!”


**끝없는 열정과 부단한 노력으로 일평생을 후회없이 멋있게 살다 가신 고 “김 재선 대령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09-30, 1929~10-21, 2010)**
(310)968-8945


키 한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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