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존심과 명예

2010-1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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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 아닌데 사람들은 자존심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사실 자존심은 명예에 해당된다. 명예에 죽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면 감당을 못한다. 명예에 흠집이 가느니,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 이럴 때에 발생되는 죽음이란 명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명예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근의 예는 한국의 노무현대통령의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일국의 대통령으로 5년간 한 나라를 통치했다. 통치 기간 동안의 평가는 나중 역사가 말해주겠지만 어쨌든 그는 지존의 자리를 가졌다. 지존의 자리는 막강한 자리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세와 명예가 따른다.

그런 그였지만 대통령 자리를 물러난 후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겪어야 했던 그의 수치심은 그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오욕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은 결국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그의 권세와 명예는 하늘을 찌른다.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 흑인인 그의 부인도 영부인으로 세상 명예의 최고 자리에 있다. 어디를 가든 최고 국빈의 자리에 앉는다. 그를 경호하는 수많은 경호원들. 그가 한 번 뜨면 교통이 마비된다. 보통사람들은 그의 곁에도 못 간다.


만약의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4년간의 권세와 명예의 최고 자리를 물러난 후 비리에 휩싸여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오락가락 한다면 그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대답은 “아닐 것이다”이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아무런 비리가 없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최초 흑인으로서의 대통령 명예와 자존심에 조금도 손상이 가질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대통령직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떤 비리에 연루되었다면 그도 검찰의 수사는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졌던 권세와 명예는 그의 자존심과 더불어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스스로 목숨은 끊지는 않을 것이란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은 클린턴 전직 대통령을 보면 알 수 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성 스캔들로 인해 그의 도덕성은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 땅에 떨어져 버렸다. 연방 검찰과 미국 의회는 그의 스캔들을 하나 없이 파내어 그를 탄핵해 대통령 자리에서 떨어뜨리려 했지만 그는 살아났다. 그리고 4년간의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과 명예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대도 그는 지금 멀쩡히 살아가며 오히려 많은 곳에 강연을 하러다니면서 큰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속한 민주당에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오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인식의 차이점이 이런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클린턴은 노무현이 자살했을 때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죽기는 왜 죽니 바보야,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가는데~”. 클린턴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힐러리를 보아도 이들 부부는 천생연분이다. 힐러리는 남편의 성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의연히 남편을 감싸고 돌았다.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의 명예에 손상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녀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 부부의 인연도 잘 지키면서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어 세계를 누비며 다니고 있지 않나.

확실한 일이지만, 자존심과 명예가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명예와 자존심은 오히려 밥벌이에 더 불이익이 될 수 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옛말도 있듯이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일말의 자존심과 명예 같은 것은 헌신짝처럼 내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한신 장군이 살기위해 동네 부랑배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듯이 말이다.밥을 먹기 위하여 뛰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누군가 “밥이 곧 하늘”이라 했듯이,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할 사람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나와야 이 세상이 그런대로 옳고 바르게 유지되지 않을까. 이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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