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나이가 무슨 상관?’

2010-10-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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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노인과 바다>란 소설이 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은 석달동안 고기 한 마리를 못 잡다가 드디어 한 마리 대어 마린(Marlin)을 낚았다. 노인은 먹지 못하고 잠도 못자면서 3일 밤낮을 바다 한가운데서 혼자 고기와 결사적으로 싸운다.손에 피가 나고 허리가 굳고 온몸이 마비되어도 포기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고기와의 싸움에서 드디어 이긴다. 그런데 잡은 그 고기가 너무 커서 배안에 실을 수가 없어 뱃전에 묶은 다음 멀리 떨어진 항구로 돌아가려고 노를 젓는다.

그런데 고기 피 냄새를 맡은 상어떼가 몰려든다. 상어떼로부터 고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또다시 사투를 벌이나 항구에 돌아왔을 때 고기는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가끔 미국에 와서 우리 사는 모습이 소설 속에 나오는, 상어에게 다 뜯어 먹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빅 피시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닷물 속에 커다란 고기 덩어리가 하나 툭 떨어지자마자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들, 가장 큰 살점은 집 모기지가 채가고, 두번째 큰 살점은 차 모기지가 채가고 세 번째 큰 살점은 각종 신용카드료, 다음은 자동차 보험료, 생명보험료, 집 보험료, 또 전기요금에 전화요금, 물값에 식품비에, 나중에는 자동차 개스비가 달랑달랑할 정도이다. 다 뜯기고 나면 앙상한 뼈만 남는다, 주위에는 낭자한 피가 흐르고.......


경기침체가 계속 되다보니 그 여파로 정년을 앞둔 미국의 55세 이상 장년층의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 한다.USA투데이가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은퇴를 앞두고 직장이나 사업을 하면서 생애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려야 하는 이 나이에 경기 침체로 인해 실직자가 늘고 소득도 급감하면서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가 증가한다는 것.경기 침체이전 55세 이상의 장년층이 가장으로 있는 가구들의 평균 가계 부채는 지난 2000년 3만4,000달러에서 2008년에는 두배인 6만6,000달러에 달했다고 한다.특히 파산신청을 한 미국인 3분의 2이상은 그 원인이 실직으로 감소한 소득을 메우기 위한 신용카드 과다 사용이라고 한다.

보통 55세 이상이면 집 한 채 정도는 지니고 있는데 실직으로 모기지 연체를 하여 집이 압류 위기에 놓여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50대 중반 장년들은 나이도 많고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레 포기하지는 말자. 나이가 들어서 대어를 낚은 위대한 사람도 많다.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성취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3%는 70~80세 노인에
의하여,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한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해 성취된 셈이다.

구체적 예로 모세는 80세에 민족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했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세가 넘어서고 다니엘 드 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미켈란 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 돔을 70세에 완성했다.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우리 인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삶의 터전에서 먹고 살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석 달동안 고기 한 마리를 못 잡아도 평생 살아온 생존현장이기에 다시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노인, 그 노인은 비록 뼈만 남은 생선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보여 주었다.미국에 사는 50대 이상 중년층은 일자리가 없어 소외감을 느끼고 놀아줄 사람도 없어 외롭고 고독하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꿈을 이루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다시 치열한 삶의 현장인 바다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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