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경술국치 100년과 교회

2010-10-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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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적인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한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한 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다. 20세기 초엽에 일어난 36년 치욕의 기간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우리에게 치유의 기간이 있었지만 친일청산 문제, 일본의 사과 및 보상 문제,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분단문제 등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들이 쉽게 치유되기는 어렵다. 모든 문제들은 이제 한일관계를 넘어 국제적으로 이념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유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경술국치로부터 발생한 근원적 사건들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되 동시에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넘어 긍지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부끄러움의 기억이 우리의 발목을 잡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긍지를 가지고 세계로 나아가는 데는 교회가 그 중심에 서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열린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경술국치 당시 끝까지 막아내고자 했던 한국 교회의 노력은 좌절한 민족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야욕의 세계관을 갖고 있던 일본에게 한국 교회는 불편한 존재였다.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으로 알려진 105인 사건에 연루된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좌절감에 항일운동마저 주춤하던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희망을 제시하면서 수치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일찍이 개화한 기독교인들은 근대화를 미끼로 다가오는 일본의 야욕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것이다.


이같은 교회의 노력이 우리나라에만 국한 되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들이었던 우키다 카즈다미를 비롯한 7명의 학자들은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 병합이 옳은 일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일본의 뻗어가는 국력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일본인으로서 강제병합을 반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그들은 국익을 넘어 정의를 선택했다. 놀랍게도 이들 모두 구마모토 학교 출신이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일본 기독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서 일본 기독교에서는 이들을 ‘구마모토 밴드’라고 부르고 있다. 이 학교의 첫 재학생 중 35명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기독교사상으로 조국을 구원할 것을 결심했다.

이 결심은 그들을 각계의 리더로 성장시켰고 마침내 무력국가 일본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한 선택으로 열매 맺었던 것이다.

한일관계라는 특수성을 넘어 평화와 희망이라는 기독교적 보편성에 있어서 두 나라 기독교인들은 이처럼 뜻이 맞았다. 한국 교회는 단순한 수치의 회고를 넘어 긍정으로 나가는 데 앞장 설만큼 성장했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치욕의 경험을 가진 나라들을 돌보고, 국권은 있지만 취약한 경제구조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불법 체류라는 선택도 마다 않는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넓혀야 한다. 이처럼 국치 100년 경험이 민족을 넘어 세계의 기준에 우리를 맞추는 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한국교회는 고난 속에서 성장했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해방의 길을 선도했던 선배 신앙인들의 노고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교회 생활에는 고난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누리게 된 것은 지극히 감사한 일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책무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의 편에 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김기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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