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2010-10-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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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아침 7시 동회 스피커에서 새마을 노래가 터져 나왔다. 순간, 집집마다 대문이 열리며 남녀노소 빗자루를 하나씩 집어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민체조를 했던 기억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정겹다. 그때 함께 청소하고 체조하면서 궁금한 게 참 많았었다. ‘왜 이른 시각부터 온 동네가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고 야단법석을 떨까? 음악도 촌스럽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체조하는 것도 영 내 스타일이 아닌데... 이왕이면 우아하게 클래식을 틀어주면 아침이 훨씬 상쾌할 텐데...’ 모차르트 소나타에 빠져 있던 소녀에겐 새마을 운동은 썩 맘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가끔 그 때 들었던 새마을 운동 노래들이 생각나 운전 중에 흥얼거리곤 한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무의식적으로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노래를 부르다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을 짓곤 한다. 얼마나 못 살았으면 이런 노래를 온 국민으로 하여금 부르게 했을까.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물질적인 목적으로만 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으로 잘 사는 나라 ‘1등 대한민국’을 꿈꾸며 만들었을 그분들의 정신이 깨달아져 고마움에 숙연한 마음이 된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여러 시간 고민하며 질문할 때가 많다. 잘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기회 될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잘 산다는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는 것들로 충실하게 채워간다는 의미 아닐까. 예습과 복습, 리허설 없이, 단 한 번씩만 주어진 게 인생길이다. 그 결과에 대해선 자신이 책임져야만 하는 게 인생이다. 의미 있는 내용으로 인생을 채우려면 먼저 그 가치를 알아야 하고, 내가 그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인생을 질그릇에 비유했다. 어떤 모양과 크기일까는 나를 만드신 이가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분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에겐 아내가, 아내에겐 남편이, 자녀에겐 부모가, 제자에겐 스승처럼 내가 선택한 큰 바위 얼굴일 수도 있고, 큰 상처를 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 더 깊이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을 만드는 분이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떤 마음으로 내 인생을 채워가고 있는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벌써 큰딸이 이십대 초반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딴 짓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이고 죽음이다. 인생을 준바한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는다. 또 아무에게네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맡기지 않는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셨던 창조주 하나님, 그 손에 내가 맡겨질 때만 세상을 살리는 멋진 인생으로 빚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주시고 기다려주시는 그분께 나의 인생을 맡긴다. 사랑해요 주님!


정한나 /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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