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동네 한국인 주민 대표

2010-09-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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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셋째 막내아들을 대학 기숙사에 떨어뜨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리 울었다. 운전하는 다른 아들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집에서 보내는 첫 날 밤, 너무 호젓하고 쓸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25년 동안 한결같이 엄마, 엄마 뭐가 필요해 누군가는 나를 찾고 힘들게 하고, 요구사항이 끝도 없던 생활이었다.

감정이 복받치는데 한편으로는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민생활의 오랜 내공이다. 아무리 힘든 일도 골 깊은 슬픔도 끝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데 그런 호사가 없었다. 아이들 아침 걱정, 그 날 스케줄에 대한 쫓김이 없는 아침 시간이 침대 곁에서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니 찾아오는 또 다른 행복이 그 곳에 같이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24시간 대기조 생활의 마감이다.

이민 1세대,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리 잡아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며 나가서 싸워야 한다. 일가친척이 많은 집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도 사랑도 아이 키우기도 나눌 수가 있다. 1.5세대만 되어도 영어도 되고 보다 전문직에 종사할 확률이 높아서 몸과 시간으로 때우는 일을 하지 않으니 좀 더 쉬울 수 있다. 생활이 전쟁이다. 정치고 투표고 없다. 봉사나 주민참여 활동을 하자니 또 다른 매일 전쟁의 연장이다. 남는 시간은 교회 가거나 취미활동으로 숨을 몰아쉰다. 다음 날 또 싸우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한 둘 모이면 작으나 크나 무리가 되고 정치가 형성된다. 너와 나의 서로 다른 의견이 있고 다수와 소수가 있으며 앞서는 자와 따르는 무리가 결정된다. 그런데 나는 의견이 없고 나서지 않고 또한 따르지도 않는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다른 대안을 찾아 포기해 버리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다스리면 된다. 이곳 토박이들의 규칙을 어기지 않고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아이들이 잘 자라서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다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인끼리 어울린다.

같이 더불어 사는 모임과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망은 많은 한인들로 하여금 교회 활동과 군집생활을 혼동시킨다. 정작 현재 생활과는 밀접한 관계가 없는 한국 정치에 관심이 깊다. 한인타운에 단체를 만들고 동참하고 발언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이웃과 동네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참여하면 어떨까? 그것의 시작은 동네 주민대표를 뽑는 선거에 참여하는 일이다.

월급도 수고비도 없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하는 시의원, 즉 주민대표 제도가 각 도시마다 있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거나 불편한 점, 동네를 발전시키고 개선하자는 시민 및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모아서 관계기관이나 시청 그리고 카운티나 주 정부에 건의하며 공식적으로 LA County Board of Supervisors에 속하는 대의원에 해당한다. 이들을 뽑는 선거이다. 우리 마음에 드는 신뢰가 가는 인사를 우리 대표로 뽑는 실제 정치 참여이다.

몇 천명의 한국인이 사는 이 작은 동네, 얼마나 많은 한인이 주민대표를 뽑는데 관심이 있으며 또한 투표를 할까? 목소리 없이 살고 있는 나이지만 아이들은 다른 세상을 살게 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투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이고 또 그들이 투표하도록 끌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둘이 아니고 몇 천명이 넘는 한인들이 살고 있는 우리 작은 동네에 단 한 명의 한국인 시의원, 즉 주민대표가 없는 이유이기도 할 터, 같은 한인이 시의원으로 봉사하고 있다면 내가 필요로 하는 일을 더욱 쉽게 건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서 반드시 한국인 주민대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투표를 무시하지 말고 참여하자는 뜻이다

학군이 좋고 한인타운에서 가깝다 하여 많은 한국 사람이 사는 동네, 그러나 물과 기름이다. 옆 집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하고 학부모 회의에 참가하는 정도의 미국사회 젖어들기이다. 나와 내 가족이 사는 동네의 주민대표를 투표하는 것만으로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작은 정치를 시작하고 참여하자. 그리하면 지금은 집을 떠나 엄마를 쓸쓸하게 하고 이를 달래기 위해 아! 너무 편하고 좋다 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우리 아이들 중의 하나가 상원의원이 되고 미 대통령이 되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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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ms@pacbell.net


서니 김
<리맥스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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