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심한 부모가 정상인 시대

2010-09-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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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작은 아이가 지난 여름방학 몇 주간 동안 집에 와 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마냥 어린아이인 것 같았고 실제로 제 앞가림에도 빈틈없고 속이 깊은 듯 느껴지는 (아이들 엄마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연년생인 제 누나에 비해 모든 면에서 어리게만 보여 아직 철이 덜 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2학년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놈을 보니, 어딘가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지난번엔 전화로 불경기인데 아빠 비즈니스는 어떠냐고 물어 기특하더니, 몇 주 있는 동안 같이 지내보니 저널리즘 공부하고 있는 제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 보이고 졸업 후에 닥쳐올 취업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것이 부쩍 철이 들어 보여 흐뭇했었다.

자식을 기르다보니 다른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바라보게 되고 가끔 사회문제가 되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 등, 귀한 한 인간을 맡아 그 아이의 성장을 도와 제대로 된 어른이 되도록 하는 과정을 함께 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이란 것에 생각이 많아진다.


특별히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제 방 책상 앞에 앉아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온 세상의 일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모두 받아들여지는 시절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아무 의미가 없는 옛말이 된 시대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처 만나보지 못한 미지의 상대방과도 소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아니 이미 누구에게도 이런 일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모두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에 더해 인터넷 뱅킹, 인터넷 결재, 인터넷 샤핑까지 모든 것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자라는 아이들도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고 어느 때나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시공을 초월해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너무 오래하거나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는 역기능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가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내는 아이들도 생기고, 인터넷 사용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되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입시 공부에 지쳐 있어도 눈만 뜨면 일어나 밖으로 나가 자치기, 말 타기에 옆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거나 겨울이면 팽이도 돌리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혹시 집에 있어도 암굴 왕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의 얘기에 정신을 뺏겨 소설책 그만 읽고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불 끄고 자라고 하시는데도 이불 속에 회중전등을 켜고 읽던 삼국지와 수호지가 생각난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노는데도 부모가 차를 태워 친구 집에 데려다 주거나 하지 않으면 같이 놀 동무를 만나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라서 혹은 부모의 이혼과 별거 등으로 미처 아이에게 손이 덜 가 혼자 있게 되는 경우가 많거나, 아니면 부모가 강압적인 태도를 가져 아이에게 제 나이에 맞는 선택권도 없이 부모의 강요로 모든 일이 행하여 질 때 무력해진 아이들은 TV나 컴퓨터에 빠져 현실 세계에선 맛보지 못하는 재미와 성취감 등을 맛보게 되니 인터넷에 과다하게 몰입하여 너무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매일 새벽 5시까지 깨어 있는 아이가 우리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고, 인터넷 라인을 취소시켜 버리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다음 방학 땐 집에 안 오겠다고 할까 봐 겁부터 내는 우리 부부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10대부터 20대로 넘어가는 학창시절은 인격이 완성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이런 시기에 부질없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은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우리세대의 잣대에 맞출 순 없는 것 같다.

대학 초년생일 때는 봄방학, 여름, 겨울방학, 추수감사절 휴가 등 조금만 시간이 있어도 집에 오던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집에 와 주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잔소리쟁이 부모들 때문에 그나마도 안 오겠다면 어찌할 거며, 더욱이 졸업 후 취직해 나가면,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울지 모를 일인데 그까짓 컴퓨터와 연애를 하든, 삶아먹든 이렇게 지켜만 보기로 마음 고쳐 잡으니 훨씬 편안한 가족이 되었다. 편안하긴 하지만, 오히려 눈치 보며 아이들 주위만 서성거리고 감시만 하는 소심한 우리 부부가 정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부모가 친구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전시회 구경도 가고, 산책도 같이 하고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로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그런 것보단 바쁜 사회생활에 지쳐 집에 오면 TV나 보며 누워 있지는 않았는지, 그나마 집에 있는 주말엔 함께 즐긴다는 생각 없이 쉬지도 못하고 주말에까지 봉사해야 되나 하고 속으로 투덜대지나 않았는지, 벌써 다 자라 제 갈 길로 떠날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들이다.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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