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 불교는 ‘religion’이 아니다

2010-09-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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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종교다. 그러나 불교는 religion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면서도 그 정의가 오해되고 있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라는 용어일 것이다.
원래 ‘종교’라는 말은 불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종(宗)이란 한자는 집안에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의 표시로, 혈통과 가문을 근본이나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종이란 글자를 불교 용어로 처음 쓰게 된 것은 AD5세기께 중국에서 인도 스님 구나밧드라가 능가경이라는 불경을 번역하면서, Siddhanta라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 실단(悉壇)으로 소리 옮김하고 종이라 뜻풀이를 달면서부터라고 한다.
Siddhanta는 완성의 극치를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의 경지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완성될 수 없는 완성’인 자비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가르침을 뜻하는 교(敎)란 그 깨달음을 상징하는 달에 이르도록, 달을 가리키는 도구인 손가락으로써 언어로 표현된 진리이다. 따라서 글자대로 거칠게 종교를 정의하면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진리를 따라 몸소 증득하려는 자들의 공동체’라 하겠다.

반면에 ‘religion’은 그 어원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으나, 호교학자인 락탄시우스(AD 3세기께)는 라틴어 religare가 religio로 다시 religion으로 전화되었으며, re-ligare를 신으로부터 일탈된 인간이 ‘다시-연결’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깨어진 신과의 관계 복원을 그 말밑으로 본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종교와 religion을 같은 뜻으로 잘못 쓰게 된 까닭은, 일본이 19세기말 개화시대 서구 열강과 통상조약을 체결할 당시, religion을 번역할 마땅한 용어를 찾지 못해 그냥, ‘종교’로 번역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어의 문화적 변용으로 이미, 암묵적 동의 아래 통용되고 있다고 하나, 종교와 religion의 바른 이해는 있어야 하겠다.

한편 근세에 들어, 신 부재의 종교인 불교를 접하게 된 서양학자들은 모든 종교에 대한 어떤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새로운 요소를 찾던 중, 그것을 ‘성’(聖)이라 규정하게 된다.

종교의 본질을 어떤 학자는 “성스러운 감정”이라고 했고, 어떤 학자는 “속된 공간에 침투한 성스러운 사건”이라고 했다. ‘성’이란 지고지순한 것에 대한 종교적 감정인 두려움, 신비함, 끌림이라고 하며 ‘거룩 개념’이라고도 한다.

특히 프랑스 사회학의 시조 뒤르껭(1917년 몰)은 종교를 “성스러운 것에 대한 신념과 그것을 토대로 한 공동사회”로 정의하면서 “불교는 비록 신을 세우지는 않지만, 인간의 고통과 구원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와, 거기서 생겨난 행사와 공동사회가 있기에 위대한 종교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종교의 공통된 본질을 ‘성’으로 규정한 학자들도 불교의 심원한 궁극에는 미처 이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불교는 성·속, 유·무, 주·객 등을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 아닌 ‘따로 또 함께’라는 상관적인 양면성을 그 본질로 간주하여, 어느 한 극단에 대한 차별된 집착을 경계하며 그것을 떠난 중도적 원융무애를 궁극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뻥 뚫려 안팎의 경계, 나와 너의 전선이 무너지면 허허 탕탕! 꼴도 없고 이름도 없는 바, 하찮은 성·속을 어디에 두겠는가.

그런즉, 불교는 무한 통쾌한 종교인 것이다.


박 재 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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