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통일세

2010-08-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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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소녀’라는 19세기 때의 그림이 있습니다. 황금 들녘을 배경으로 작은 손풍금을 무릎에 놓고 있는 눈먼 소녀가 어린 여동생과 함께 길가 둔덕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여행자들에게 손풍금을 연주해 주고 구걸을 하는 처지였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지나가는 여행객이 없습니다.

다만 이제 비가 그치고 멀리 하늘을 배경으로 쌍무지개가 뜨자 어린 여동생이 고개를 돌려 멀리 마을 위의 하늘에 뜬 쌍무지개를 바라보며 장님 언니에게 그 광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어린 여동생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장님 소녀의 얼굴 모습입니다. 비록 장님이고 구걸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소녀지만 동생이 들려주는 그 무지개를 마음으로 그려보는 그녀의 얼굴은 한없이 해맑고 예쁘고 평화롭습니다. 비 때문에 하루벌이를 공쳤지만 마음에 그려보는 무지개로 생존의 염려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세기 영국 최고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입니다. 이 화가는 불우한 성장 배경을 극복하고 불멸의 작품을 그려낸 작품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그림은 고통스런 내용이면서도 화면을 밝고 아름답게 설정함으로써 그 고통 너머의 행복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의 그림 ‘장님 소녀’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현실적인 고통이란 마음에 그리는 희망이라는 무지개로 극복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화가 밀레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 ‘장님 소녀’ 인쇄본 그림을 사무실 벽에 붙여두고 있었습니다. 이민살이가 너무 고달프고 힘들 때, 그 그림을 통해 희망의 목소리를 듣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그 너머 내일의 무지개를 그려보면서 현실을 극복하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의 영역으로 구원받을 존재이지 본능으로 살아가는 짐승으로 타락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광복 60주년 기념일을 보냈습니다. 비록 타국에 살아도 우리 한인들은 광복절 60주년을 보내면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특히 미주 한인으로서 우리의 선배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그 어려운 타향살이에서도 독립자금을 보내고 독립투쟁에 참여하였던 것은 더 나은 조국의 내일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조국 광복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새기면서 민족과 함께
자기 존재를 확인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광복 60년이 되었지만, 우리민족에게는 아직 진정한 광복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북쪽에 있는 2,000만 동족이 아직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민족 통일과 북한 동족의 자유라는 쌍무지개를 한 시도 잊지 않고 삽니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에서 민족의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통일세’ 제정을 논의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불행 속에 살아가고 있는 북한 동족들에게나, 그 동족들의 고통을 가슴에 박힌 가시처럼 느끼며 사는 우리들에게나, 민족의 내일에 또 하나의 영롱한 무지개가 뜨고 있다는 낭보였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는 생각과 함께.


송 순 태(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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