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터닝 포인트

2010-08-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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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융자 조정을 하다 실패해 숏세일로 돌린 지 몇 달 지난 집이 드디어 팔리게 되었다.

이민생활 수 십 년에 남은 건 성공한 자식들뿐이라며 쓸쓸해하던 고객의 깊게 파인 눈주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알뜰살뜰 가꾸던 집 구석구석에 손 때 묻어나는 크고 작은 추억들을 둘러보곤 가슴 아파했다.


그 고객의 말처럼 먹고 사는데 바빠 어떻게 살았는지 삶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살았는데도 집 한 칸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게 회환처럼 남는다며 탄식한다.

이삿짐 챙기는 손에 힘이 빠져 물건마다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고객의 손 때 묻은 그 집에서 새로 올 바이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잘 나가던 비즈니스도 불경기를 맞아 정리하면서 허접한 마음을 추스리는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잘 살아보겠다며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열심히 살았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자식들과 대화도 없이 사느라 부모 자식 사이가 남달리 소원했다.

뉴욕에 자리 잡은 자식과는 교류가 별로 없다가 융자조정을 하면서 날라 온 서류를 이것저것 물어보다 모처럼 부자간에 긴 긴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늘 자식 앞에서 강한 모습만 보인 아버지라 ‘그저 잘 사시겠거니’ 했다가 융자 조정을 통해서 비로소 부모의 재정 형편을 알게 된 아들이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융자조정이 안되고 숏세일로 집을 정리하게 되자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는 아들의 결정에 오래도록 가슴에 패인 냉전이 풀어져 버렸다.

“다 잃은 줄 알았는데 그간 소원했던 자식과 가까워져서 무엇보다 기쁘다”며 모처럼 활짝 핀 웃음을 보인다.

재물은 날렸어도 더 큰 자식사랑을 새삼 얻었으니 이제 느즈막이 손자들 보는 재미에 살겠다며 이삿짐 싸기에 분주하다.

모처럼 길어지는 불경기에 집을 작은 평수로 줄이고 소비를 억제하는 긴축재정이 늘고 있다.

심적으로도 돈을 쓰지 않아 돈이 돌지 않는다.

LA 폭동 때 모든 것을 던졌다가 다시 일어섰던 고객이 최근 파산을 불렀다.

“부자가 되는 게 나하고는 상관이 없나 봐. 늘 따라다니던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주기적으로 손을 들게 되니 너무 힘들어. 이젠 그저 마음 비우고 살꺼야.” 하면서 당분간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하나씩 해보고 싶다며 덤덤해하는 표정에 오히려 편안함이 보인다.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공간을 채워 줄 또 다른 희망이 있기에 쉽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루는 길지만 일 년은 짧다’는 말은 지금 고통 받는 오늘은 당장 견디기 힘들지 모르지만 긴 인생을 통해 돌아본 일 년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세월을 일컫는 의미이다.

당장 여유 없고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내일을, 일 년 후를 기대하며 나름대로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보길 기대한다.

위기가 인생 역전을 만든다.

살면서 가장 힘든 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다시 시작해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삶은 오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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